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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근로혁명, 길을 묻다] “ITㆍR&D는 생산라인과 달라… 탄력근무제 늘려야 글로벌 경쟁”

입력
2018.04.10 17: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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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강자 넷마블, 근로시간 줄이니

신작 출시 목표량 절반으로 뚝

게임 하나 개발에 1년 걸리는데…

후발업체는 따라가기 더 버거워

전자 R&D 경쟁력 저하 우려

출시 직전 초고강도 근무가 효율

성공신화 만든 후 ‘푹 쉬는’ 패턴

“탄력 근무시간 1년까지 확대를”

IT산업은 국내 아닌 글로벌 경쟁

게임ㆍ웹툰시장 中ㆍ日 무서운 추격

유연근무 시간은 한국이 더 짧아

“선진국 수준은 돼야 기업들 숨통”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매출 2조4,248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게임업계 1위에 등극한 넷마블은 업계 최초로 근로문화 개선에도 뛰어들었다. 수십 년 내려온 게임업계 악습인 신작 출시 전 장시간 집중근무(크런치 모드)를 지난해 2월 폐지했고 야근과 주말 근무, 퇴근 이후 메신저 업무 지시까지 완전히 금지했다. 하루 5시간인 ‘코어 근무시간’을 채우면 나머지 시간은 자율적으로 일하는 획기적인 근로시간 제도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에만 집중하며 글로벌 게임 업계 3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넷마블은 근로시간 변화 이후 강점이던 ‘스피드’가 무뎌졌다. 지난해 신작 17종 출시를 계획했지만 시장에 내놓은 게임은 8종에 그쳤다. 올해 들어서는 선보인 신작이 하나도 없다. 지난해 12월부터 약 4개월간 신작 가뭄이다. 넷마블 측은 “근로문화 개선이 결과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 곤란하다”고 말하지만, 업계에서는 근무시간 단축과 신작 실종 사이에 연관성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주당 최대 52시간 근무 시행을 앞둔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넷마블이야 이미 실력과 규모를 키워 근무제도 변화를 시도할 여유가 있지만, 후발 주자들이 똑같이 근무해서는 따라가기 버겁다”며 “게임 하나 개발에 통상 1년 안팎이 걸리는데,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 기간은 최대 3개월이라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다.

주당 52시간 근무를 앞두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업종은 특히 시름이 깊다. 연구개발(R&D)이 승패를 좌우하는 정보기술(IT) 등 4차 산업혁명 분야는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신제품을 출시해 성장을 이어온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52시간 근무 도입으로 인한 R&D 분야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 개발팀은 길게는 1년 이상 한 제품에만 매달리고, 제품 출시 직전은 초고강도 집중근무가 이어진다.

지난해 출시돼 무선청소기 열풍을 일으킨 LG 코드제로A9 개발팀도 출시가 임박해 디자인을 다시 바꾸며 약 6개월간 집중근무, 성공신화를 일궜다. 개발 과정에서는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다. 대신 프로젝트를 끝내고 쉴 때는 확실히 쉰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이 “3개월만 허용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을 1년까지 확대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생산라인과 달리 R&D 분야는 ‘투입 노동력=생산량’이란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창의성이 중요해 채용을 늘린다고 R&D 성과가 확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IT업계 관계자는 “핵심 인재가 아닌 이상 인원이 늘어나면 커뮤니케이션 단계가 늘어나 업무 속도만 떨어지고, 일도 별로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R&D 분야는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의 경계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문제”라며 “가령 기발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해 자신을 자극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근로로 봐야 하는지 모호하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인 IT 산업의 경쟁 무대가 세계이고, 상대는 글로벌 기업들이라는 것도 문제다. 세계 시장을 개척 중인 게임과 웹툰 역시 당장 중국이란 무시무시한 상대와 겨루고 있다. 글로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의 이성업 이사는 “IT 업종은 우리들끼리의 경쟁이 아니다”며 “웹툰만 해도 일본 미국이 무섭게 따라온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유연근무제 중 근로기준법이 정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꼽히지만 국내는 기본적으로 2주일, 노사 서면 합의 시 3개월이라 영국 독일 일본보다 짧다.

탄력적 근로제 단위시간 연장 요구가 빗발치자 고용노동부는 10일 “하반기에 실태조사를 시작하고 관계부처와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혀, IT 업계는 당분간 제도에 맞춰야 한다. 개정 근로기준법 부칙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오는 2022년 말까지 탄력적 근로제 개선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2시간 근무를 무리해서라도 시행할 수 있는 업종도 있지만,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어려운 업종도 있다“며 “탄력적 근로시간을 3개월로 제한하는 것은 연구업종의 경우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어 최소한 선진국 수준과 맞춰 연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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