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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차량 출입금지” 아파트 '갑질' 공문 논란, 내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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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차량 출입금지” 아파트 '갑질' 공문 논란, 내막은?

입력
2018.04.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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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에 (택배)차량 통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2일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의 A아파트 단지에 관리사무소 명의로 붙은 공지문 내용 일부다. “아파트 품격, 가치, 안전, 쾌적을 위해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제한한다”는 게 골자였다. 공문에는 택배기사가 ‘지상 출입이 제한돼 배송이 힘들다’고 할 경우 입주민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적혀 있었다. 택배기사에게 기사의 기본업무는 ‘물품배송’임을 확인시킨 뒤, 단지 내 지정 장소에 주차해놓고 카트로 배달하는 ‘팁’을 알려주라는 것이었다.

이 공지문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지상 출입 제한에 반발한 택배 기사들은 차량 진입이 가능한 곳까지만 들어와, 길 바닥에 배송 물품들 쌓아놓고 주민들에게 ‘찾아가라’고 연락했다. 일부 기사는 택배 분실을 우려해 물품을 쌓아둔 현장을 밤 늦게까지 지켰다. 현재는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 택배 운송이 정상화 된 상태다.

8일 보배드림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공지문과 당시 사진이 공개되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관리사무소가 ‘갑질’을 하고 있다”, “택배차량 통제와 품격, 가치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지적들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관리사무소 측은 ‘품격’, ‘가치’ 같은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처음부터 출입 막지 않아… 관련 사고 때문”

관리사무소장 B씨에 따르면, A단지가 택배 차량의 지상출입을 처음부터 막은 건 아니었다. 지난 2월 한 어린이가 단지 내에서 후진하는 택배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한 뒤 내린 결정이다. 다행히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B씨는 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A단지 입주민 70~80%는 30대 학부모”라며 “(사고 이후) 안전 문제에 대한 민원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는 이후 택배 업체에 관련 공문을 보냈고, 1개월 가량의 조율 기간을 거쳐 지난 2일부터 택배차량의 지하주차장 출입만 허용하고 있다.

모든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 내 지상 도로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삿짐, 가구 등 부피가 커 카트 배송이 불가능한 품목은 지상 출입을 허용하며, 지상 일부 공간을 택배차량들의 임시주차 장소로 비워놨다. 소형 물품은 이 공간에 차량을 세워두고 카트에 실어 배송하면 문제 없다는 게 B씨 설명이다. 그는 “출입 제한 초기에는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하는 업체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잘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공지문에 택배차량의 지상출입 제한 이유가 두루뭉술하게 설명돼 있어 오해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공지문이 화제가 되는 통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A단지처럼 택배차량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인근 C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도 “택배차량이 단지 안으로 들어오면 아이들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며 “’갑질’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시대가 (안전 중심 주의로) 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출입 제한은 택배기사 ‘생존’ 위협?

현재 A단지를 비롯해 다산신도시의 많은 아파트 단지가 택배차량의 지하 주차장 출입만을 허용하고 있다. 지상을 통해 배송을 하려면 관리사무소에서 지정한 장소에 차량을 세우고, 거기서 물품을 카트 등에 실어 주민들에게 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택배 기사들의 이동 거리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하 주차장을 통한 배송이 오히려 수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택배차량의 탑(수직) 높이. 대다수 지하 주차장의 높이는 2.3m인데 택배차량의 탑 높이는 약 2.5m 정도다. 많은 택배차량은 지하 주차장 출입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아파트단지 측은 택배업체와 기사들에게 차량의 탑 높이를 낮추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기사들은 탑 높이를 낮추는 것은 배송수량 감소와 직결되기 때문에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0일 다산신도시 입주자 연합카페에는 논쟁적인 글이 한 편 올라왔다. 자신을 대형 택배업체 소속 기사라고 밝힌 남성은 택배차량의 탑 높이를 줄이는 게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택배는) 본인이 배달하는 만큼 벌어가는 구조다. 탑 높이가 줄면 계절마다 배달물량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평균 수입에서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마치 일반 버스기사에게 ‘우리 동네에서 운전하려면 소형 마을버스로 바꿔서 다녀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특히 택배업체 소속이 아니라 업체와 계약을 맺고 배송하는 개인사업자의 경우 탑 높이를 낮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탑 높이 변경에 필요한 비용과, 변경에 따라 줄어들 배송 물량을 고려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것이다. 김진일 전국택배노조 사무국장은 “(탑 높이 변경은) 상당히 무리한 요구”라며 “하루 배송물량이 일정치 않은 기사들의 경우 수입 감소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관리사무소장 B씨는 “택배업체, 기사들과 지속적으로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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