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주 4·3 70주년 '403인의 함성' 퍼포먼스 후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948년 4월 3일부터 제주도에서 벌어진 일련의 충돌과 이로 인해 희생된 수만 명의 비극을 칭하는 ‘제주 4ㆍ3’은 70년 동안 제주도민에겐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가 누구라 말하면 ‘빨갱이’로 내몰려 지역 사회에서 생매장되다시피 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4ㆍ3 유족들은 남로당(남조선노동당)과 군경 중 누구의 총에 가족이 죽임을 당했는지 물을 수조차 없었다. 개중에는 판결문 없는 미 군정 법정의 심판을 받아 옥살이와 내란죄의 주홍글씨를 평생 가슴에 묻은 채 살아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3일 제주 4ㆍ3 70주기 추념식을 찾으면서 유족들은 오래 참은 눈물을 당당히 흘릴 수 있었다. 남로당의 편에 서지 않았음에도 경찰이 쏜 총알을 박고 죽어야 했던 남편과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준다는 대통령의 위로 덕분이었다. 구순을 눈앞에 둔 수형 희생자 18명의 무죄 여부를 가늠해 줄 재심청구소송 재판도 지난달 19일 2차 공판(본보 3월 20일자 1면 보도)에 이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해녀를 모집하는 종이인 줄 알고 남로당 가입문서에 손도장을 찍어 빨갱이란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던 오희춘 할머니, 서북청년단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 옥살이를 거쳐 25년 만에야 고향으로 돌아온 현창용 할아버지, 그리고 사연마저 묻혀버린 도틀굴 속 희생자 23명을 비롯한 수만 명의 원혼이 한을 달랠 날이 머지않았음이다. 70년의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제주에도 봄이 오고 있다.

정부 차원의 4ㆍ3에 대한 올바른 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4월 한반도는 4ㆍ3 등 수많은 비극의 근원이 된 분단의 현대사를 어쩌면 새롭게 쓰게 될 지점으로 치닫는 중이다.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내달 북미 정상회담이 남북, 북미 관계를 화해 모드로 돌려놓고 북한의 비핵화 약속 이행이 이뤄질 경우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물꼬마저 트일 것이란 기대감이 달아오르고 있다. 낙관론에 따르면 국제사회의 제재망을 견디지 못한 김정은 정권은 가장 비싼 값을 받아 핵을 처분하고 이어 중국식 개방ㆍ개혁 노선을 뒤따르기 위해 대화의 장으로 나섰다. 이대로라면 북한의 핵무력 위협과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선제타격 으름장으로 1년 전엔 상상조차 못 했던 통일의 밑그림마저 공론의 테이블 위에 놓일 수 있다.

봄이 다가오는 속도를 여름은 언제나 빠르게 추월해왔다. 목련이 피는가 싶더니 불현듯 벚나무가 신록으로 갈아입는 식이다.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지나 돌연 통일이 목전으로 다가오기 전 4ㆍ3으로 상징되는 광복이후 수많은 비극사를 떠올려야 한다. 미국과 소련, 그리고 패망한 일본마저 각자의 정치적 소득을 위해 부지런히 주판알을 튕기느라 분단된 땅에서 우리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4ㆍ3과 대구 10월사건, 여순사건,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며 수백만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70년 전 빗나간 궤도를 거듭해 따르진 않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반도의 격변을 지켜보는 주변국들의 눈초리는 이해타산으로 날카롭다. 각종 스캔들로 입지가 흔들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국면이 실익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오히려 발톱을 드러내 세 전환을 꾀할 것이다. 중국도 남북이 가까워지는 상황이 닥치면 한반도내 영향력 상실을 우려해 우리 안보와 관련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올 수 있다. 대화가 탐탁스럽지 않은 일본의 노림수는 끝까지 화해 국면을 방해할 것이다. 한반도를 향한 격랑 속에 70여년 전 광복 이후처럼 주변국의 득실 계산에 휩쓸려 방향타를 놓친다면 우리는 4ㆍ3과 같은 비극이 잉태하는 모습을 다시 지켜볼 수 있다. 4ㆍ3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다.

양홍주 기획취재부 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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