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한 해 30~40편 맡아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어
제작회의부터 메이크업 논의
'배우 불편함 최소화'에 중점
#보통 투입 되는 스태프는 4명뿐
외국에 비해 인력-시스템 미비
시간이 넘게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뮤지컬 배우들의 머리는 헝클어짐이 없다. 비밀은 무대 아래 분장팀이다. 김유선 분장감독이 담당했던 뮤지컬 '모차르트!'.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두 시간이 넘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야 하는 뮤지컬 배우들. 하지만 그들의 머리는 헝클어짐이 없고, 화장은 늘 새로 한 듯 산뜻하다. 비밀은 무대 아래 분장팀이다. 분장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대 위 배우가 메이크업으로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 분장팀은 배우들과 함께 뛰는 스태프로 불린다. 분장팀의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작품의 막이 오르기 5~10개월 전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분장 콘셉트를 잡는 일부터 실제 준비까지, 한 두 사람의 힘 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에 뮤지컬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뮤지컬 분장에 뛰어들어 30년 동안 뮤지컬시장의 성장과 함께 뮤지컬 분장을 키워 온 사람이 있다. 지금도 한 해에 대형 뮤지컬 30~40편을 담당하는 김유선(51) 분장감독이다. 그를 거치지 않은 뮤지컬이 거의 없는 셈이다. 올해도 ‘빌리 엘리어트’와 ‘광화문 연가’ ‘킹키부츠’ ‘안나 카레니나’ ‘명성황후’ 등을 작업했고 개막 예정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카고’ ‘노트르 담 드 파리’ ‘웃는 남자’ ‘미인’ 등이 그의 손을 거칠 예정이다.


메이크업, 헤어, 그리고 특수분장

배우들의 메이크업을 직접 담당하는 현장 스태프는 흔히 분장사로 불린다. 배우 30명이 등장하는 뮤지컬을 기준으로 4명의 스태프가 현장에 투입된다. 조연 배우와 앙상블들의 메이크업은 1시간30분 정도면 마치지만 주연 배우까지 하려면 4시간은 족히 걸린다. 최대한 땀이 덜 나게 기술적으로 메이크업을 마무리 지어주거나, 장마철에는 머리카락을 더욱 단단하게 고정하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공연 중에는 땀을 닦아주거나 메이크업을 수정한다.

김유선 분장감독이 서울 논현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작업 중인 가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오는 7월 초연하는 뮤지컬 '웃는 남자' 가발과 특수분장 준비로 한창 바쁘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유선 감독은 이런 현장 팀을 총괄한다. 공연 ‘분장’ 일에는 얼굴 메이크업과 가발을 비롯한 머리, 그리고 특수분장까지 세 가지가 포함된다. 창작뮤지컬의 경우 메이크업을 어떻게 할지 국내 창작진이 직접 정해야 하기 때문에 분장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해외 뮤지컬을 라이선스로 들여왔을 때는 분장이 이미 정해져 있어, 이를 현지에서 총괄한다는 의미로 분장 슈퍼바이저라고 한다. 김유선 감독은 이 모든 직함을 거쳤다.

분장감독의 업무는 뮤지컬 제작회의 때부터 시작된다. 분장은 가장 마지막 단계다. 대본이 완성되면 무대 디자인이 먼저 이뤄진다. 그 후 의상이 만들어지고, 분장은 이들과 결을 맞춰가기 때문이다. “무대 크기가 커지면 의상과 소품도 커지죠. 그럼 분장도 강해져요. 반대로 무대가 미니멀하면 메이크업을 강하게 할 필요가 없죠.”

특수분장은 또 다른 전문분야다. 김 감독은 특수소품만 제작하는 작업실도 따로 꾸렸다. 특수분장 전문가를 섭외하려면 제작비가 더 올라가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배웠다. 특수분장에서는 어떤 모양인지보다 기능성이 사실 더 중요하다. 김 감독은 요즘 7월 초연하는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 특수분장으로 바쁘다. 어릴 때부터 입이 찢어진 채 버림 받은 주인공 그웬플린의 입을 잔인하면서도 멋있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거의 1년 넘게 준비했어요. 테스트는 6개월 넘게 진행하고 있죠. 마스크처럼 미리 만들어 놓는 게 아니라, 매번 분장을 새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접착력 등을 많이 고민했어요. 재료의 성분도 따져야 하고요.”

제일 중요한 건 노래를 하는 배우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최근 작업한 ‘킹키부츠’에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원래 배우들의 이마에 달던 마이크를 음향 상태로 인해 입 옆에 달게 됐는데, 마이크에 머리카락이 걸리면서 배우들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는 머리카락을 제대로 고정하는데 집중했다. “보여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배우가 불편하지 않게 하는 거예요. 여기에 디자인도 따라오면 더 좋은 거고요.”

공연 '분장'에는 얼굴 메이크업과 머리(가발), 그리고 특수분장이 포함된다. 김유선 분장감독이 가면 작업에도 참여했던 뮤지컬 '팬텀'.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분장계의 역사

김 감독도 30년 전에는 ‘헤어핀과 분첩’을 든 현장 분장사로 시작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직업을 고민하던 중 미용사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방송사 분장팀에 들어가게 됐다. 그곳에서 만난 ‘스승’이 김성옥 분장감독으로, 지금 김유선 감독이 대표로 있는 킴스프로덕션은 김성옥 감독이 만들었던 회사다.

분장을 처음 접했지만 금세 재미를 느꼈다. 방송, 영화, 창무극 등을 거쳐 뮤지컬에 발을 들였다. 지금까지도 “남자는 혼자인” 분야에서 김 감독이 뮤지컬에 빠져들 게 된 데는 음악 영향도 컸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은 LP판이 3,000장이 넘었다. 그 앨범들 속에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캣츠’의 넘버들이 가득했다. 라이선스도 없이 ‘캣츠’를 국내에서 “몰래” 올린 공연을 보고 그는 뮤지컬이 21세기 공연계 대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분장감독으로 일하게 된 건 1995년 초연한 ‘명성황후’에서다. 윤호진 에이콤 대표를 한참 쫓아다녀 작품을 따냈다. 이듬해에는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통해 해외의 가발 분장을 처음 접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국내 뮤지컬 스태프들의 실력이 더욱 꽃피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뮤지컬 초석은 ‘명성황후’가 닦았고, 꽃 피운 건 ‘오페라의 유령’에서죠. 그 때 참여했던 스태프들이 지금 뮤지컬 각 파트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어요.” 김 감독은 ‘오페라의 유령’ 때 만들었던 피 묻은 마스크 분장을 지금도 갖고 있다. 2시간 걸려 특수분장까지 직접 맡았기 때문에 각별하다.

김유선 분장감독이 1995년 초연 때부터 분장을 담당했던 뮤지컬 '명성황후'는 현재까지 공연 중이다. 에이콤 제공

그는 뮤지컬 분장에서도 고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명성황후’ 때는 비녀와 관자의 모양, 착용법등을 많이 공부했다. ‘모차르트!’에서는 과거 유럽의 복식 문화 재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고증을 하지 않으면 패션디자이너가 돼야죠. 우리는 공연 작품을 올리잖아요. 해외 무대에 올려질 것이라 생각하면 고증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열악한 국내 뮤지컬 스태프 구조

“분장! 커피 타 와.” 이 말 한 마디를 듣고 김유선 감독은 “분장 스태프들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현장에서 일했다.” 분장사들을 허드레 일꾼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나아졌지만 해외 제작 시스템에 비하면 아직도 국내에서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는 좋지 않은 편이다. 예컨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아이다’에서는 가발을 만지고 바꿔주는 가발 전문 스태프만 8명이다. 메이크업만 담당하는 스태프가 3명으로 총 11명의 분장 스태프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4명이 모든 일을 담당한다. “미국은 배우조합이 있어서 분장 수업을 하기도 하고, ‘캣츠’의 경우도 배우들이 직접 분장을 해요. 그런 인프라가 아직 우리는 부족하죠. 후배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김 감독은 2000년과 2010년 한국뮤지컬대상에서 기술상을 받았다. 기술상에는 조명과 소품, 분장 등이 모두 포함된다. 당시 그의 소감은 “10년 뒤에 또 받겠다”였다. “그런데 제가 아닌 팀에게 주는 상이면 좋겠어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는 더 해보고 싶은 작품은 없다면서 “지금까지 해 온 작품들을 더 완성도 높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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