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대를 대학에서 보내는 동안, 엄마는 40대를 마트에서 보냈다. 엄마는 대형마트 협력업체 파견 노동자로 꽤 유명한 식품업체 소속이었지만, 그건 소속일 뿐이었다. 마트 관리자의 통제와 지시를 받았고, 휴일이나 업무 시간 조정도 마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주된 업무는 냉동식품 관리와 진열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커다란 냉동실을 오가며 차가운 상품을 진열하고, 마트 일까지 도왔다. 마땅히 쉴 곳도 시간도 없어서, 창고나 화장실에서 겨우 몇 분 앉아 있는 것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에게 새로운 증상이 하나씩 늘어갔다. 먼지 많은 창고와 온도 차가 심한 냉동실을 오가는 동안 눈물샘이 고장 나서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흘렀다. 또 무거운 냉동 박스를 나르고, 온종일 서 있다 보니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그렇게 엄마는 병원에 입원할 때가 되어서야 마트에서 나올 수 있었다. 8년 만이었다.

지난 3월 31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서울 구로 이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던 여성이 근무 중에 사망했다. 그녀의 자리는 24번 계산대였다. 그녀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계산대를 나섰고, 얼마 가지 않아 쓰러졌다. 사망원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에 의한 돌연사로 추정하고 있다. 고인이 된 권미순 씨는 마트에서 10년을 일했고, 올해로 48세였다. 30대 후반에 마트에 들어가서, 40대를 맞이했다. 엄마가 그랬듯이 그녀도 병원에 실려 갈 때가 되어서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급격히 증가했다. 경제 위기와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로 서비스 산업 규모가 커졌고 기업은 감정노동, 저임금노동, 유연근무에 필요한 여성을 대거 고용했다. 특히 30~50대 여성노동자가 많이 모여 있는 마트는 콜센터 만큼이나 상징적인 공간이다. 문제는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왜 아프거나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냐는 거다.

한편, 24번 계산대에는 동료들과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사측에서 추모를 막기 위해 출입을 통제했다. 유가족과 노조는 응급조치가 빠르게 이루어졌다면 살릴 수 있었다며 사측에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오히려 이들을 ‘과격시위’, ‘영업방해’라는 언어로 보도자료를 내고 4월 5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구로 이마트는 10시에 문을 열고 11시에 마감한다. 한 달에 휴일이라고는 단 이틀이다. 대형마트가 지역상권과 상생하기 위한 대책으로 영업시간을 단축했지만, 최근에는 서로 경쟁하듯 다시 연장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은 늘리면서, 그만큼의 휴식시간이나 임금은 보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경쟁해서 살아남고 이익을 중요시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 목숨보다 우선할 수 없다. 그리고 그녀는 적어도 10년을 함께 일한 ‘동료’이자 ‘직원’이지 않았는가.

24번 계산대에는 이미 하나의 세상이 담겨있다. 그녀가 10년 동안 일하는 사이, 아이들은 자라서 성인이 되고 그녀는 가족과 자신을 돌보며 경제권을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계산원으로서 일에 대한 숙련도를 쌓아갈수록 내심 뿌듯했을지도 모른다. 또 그곳에서 동료를 만나고 삶을 다져갔을 것이다. 사람들이 ‘반찬 값’ 벌려고 마트 일 하냐고 무시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차선인 그 자리가 그녀에게는 최선의 자리였음을 나는 엄마의 노동을 통해 배웠다.

그러니까, 이마트는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동료와 시민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사유지’임을 내세워 애도를 막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그녀의 노동을 지울 수 없고, 그녀의 삶을 지울 수 없다. 애도마저 막을 권리가 당신들에게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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