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딱지가 붙은 사람들이 성폭력이나 뇌물 수수 같은 범죄에 연루되면 어김없이 ‘카이사르의 브루투스’가 된다. 그들의 열렬한 신봉자는 물론이고, 평소 그들에게 단 한줌의 신뢰도 주지 않았던 정치적 반대파들에게까지 ‘믿었던 너마저’가 된다.

대중의 분노 포인트는 배신감에 맞춰진다. ‘도덕성이 생명인 진보가 어떻게….’ 라는 식이다. 자연스럽게 진보 진영의 범죄자는 법적 책임과 별개로 심리적 가중처벌 대상이 된다. 보통 보수 진영의 범죄자에겐 ‘파렴치’, ‘뻔뻔함’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진보 범죄자들은 ‘위선’, ‘이중성’이란 단어로 공격받는다. 묘한 이중잣대다. ‘보수는 원래 그런 거 아냐?’라고 넘기면서도 ’진보라면 적어도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진보 진영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도덕적(또는 도덕적인 척)이거나 청렴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고 볼 수 있겠다. 달리 생각하면 ‘진보=도덕성’ 프레임은 고결한 도덕성을 가진 적잖은 보수주의자들을 무시하는 셈인데, 실제 보수에서 발끈하는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진보와 도덕성을 동일시 하는 것은 보수 진영의 간교한 프레임”이라며 “도덕을 버리자”는 과격한 진보주의자도 있다.

‘진보와 도덕성’을 같은 묶음으로 볼 이유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정치철학자 김만권은 그의 책에서 “원칙적으로 도덕은 진보를 규정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부도덕하다고 보수나 우파가 되는 게 아니고, 보수와 우파에도 도덕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이들이 진보인가”라고 썼다.

도덕성은 원래 보수의 덕목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도덕이란 기존 가치들의 결집이고 보수의 이데올로기”라며 “가진 자일수록, ‘사회 안정’을 추구할수록, 모범을 보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사례를 봐도 그렇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의 타깃이 진보 인사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이전에도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에서 발생한 성 추문 사건이 적잖았다. 2000년 광주 5ㆍ18 민주화운동 20주년 전야제 때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은 유흥주점에서 술판을 벌여 논란이 됐고, 진보 정권으로 분류되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도 뇌물 수수 사건이 없었던 게 아니다. 물론 부패의 심각성을 보수 정권ㆍ단체와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진보의 도덕성을 높이 쳐주는 것도 우스워 보인다.

때문에 정치판에서 ‘도덕성이 무기’라는 말을 할 때마다 몹시 거슬린다. 웬만해선 도덕성을 거론하지 못하는 보수와 달리 진보 쪽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좌우를 막론하고 개인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 도덕성을 싸움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책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도덕과 도덕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썼다. “누군가를 도덕적이라 했을 땐 그 사람 개인의 행실에 국한시켜 하는 말이지만, 도덕주의적이라 했을 땐 그가 세상을 도덕의 잣대로만 본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도덕은 자신을 향하지만 도덕주의는 남을 향한다”며 “남을 단죄할 땐 도덕주의의 칼을 쓰고, 자신의 처신은 도덕을 초월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고 했다.

외국인의 눈에도 우리의 도덕성 논쟁은 특별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란 책에서 한국사회를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라고 묘사했다. 도덕과 무관한 활동을 하는 운동선수와 연예인도 도덕을 외치며 필사적으로 자기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말과 행동을 도덕의 잣대로 평가하고 경쟁하는 도덕 지향적 성향이 심지어 한국의 TV 드라마에도 나타난다고 했다. 드라마 등장인물이 “당신은 (도덕적으로) 틀렸어, 이렇게 해야 맞아”라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일방적으로 단정한다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역동적인 것은 도덕 쟁탈전 때문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단서처럼 달아놓은 글은 아프게 읽힌다. “한국은 확실히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지만,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준규 디지털콘텐츠부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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