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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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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치’

입력
2018.04.05 11:4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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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두 전직 대통령의 연이은 구속 수감은 정치가 과연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깊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정치를 도대체 무엇으로 생각했기에 국가를 그토록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자신들은 그처럼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정치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 등 국가의 공식적인 제도들을 매개로 한 엘리트들의 통치활동, 공적인 일에 대한 집단적 심의와 결정, 정파들 사이의 권력투쟁, 평등한 시민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관계 등은 정치의 중요한 측면들이다. 한 나라의 정치는 이런 여러 가지 측면들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된다. 엘리트들의 통치행위나 권력투쟁 측면이 더 현저히 부각되면 대체로 권위주의적 특성을 띠게 되고, 평등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포용적인 결정절차가 더 중시되면 민주적인 특성을 띠게 된다.

하지만 정치의 성격을 좌우하는 더 근본적인 요인이 있다. 그것은 국가를 이해하는 위정자들과 시민들의 상상의 틀(social imaginary)이다. 즉, 국가를 단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기업결사(혹은 목적결사)로 상상하는지, 아니면 일반적 법체계를 매개로 결합된 평등한 시민들의 결사체로 상상하는지에 따라 정치의 성격이 결정된다. 17세기 유럽에서 민족국가체제가 확립된 이래 국가는 점차 기업결사에서 시민결사 형태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근대국가가 출현한 지 4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기업결사의 특성이 강한 국가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국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이 두 가지 국가형태는 20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오크쇼트(M. Oakeshott)가 제시한 것으로 두 전직 대통령이 정치를 이해하고 실천했던 방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통치방식은 국가를 일종의 기업이나 왕족의 세습 가산(家産)으로 생각하는 곳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정치 스타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기업으로 간주할 경우 정치는 사회의 물적·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국부를 극대화하는 경영활동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국가를 세습 가산처럼 여기는 경우에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없어져 가정관리 활동과 정치의 구분이 사라져버린다.

기업결사에 적합한 정치의식이 널리 퍼져있는 곳에서는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여러 가지 정치적 해악들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국가의 통치자들과 고위관료들이 경제성장이나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법률과 민주적 의사결정절차를 무시하는 행태가 빈번히 나타난다. 국가의 지상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법적 절차와 규칙이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국가에서는 통치의 합법성과 사법적 정의를 담보하기 어렵고, 정치권력과 사회·경제 권력 사이에 불의한 카르텔이 형성되기 쉬우며, 정실에 치우친 인사와 국정농단이 발생하기 쉽다.

반면에 국가를 시민결사로 상상하는 곳에서는 기업결사에 만연한 정치적 해악들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위정자들과 일반 시민들 모두가 법률의 권위를 승인·존중하기 때문에 불법적인 권력남용과 국정농단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 따라서 주권자인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철저히 보장되고, 위정자들과 공무원들이 법률을 엄격히 준수하며 공무를 집행하며, 그 누구도 부당한 억압과 차별을 받지 않는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치적 실패는 우리나라가 명실 공히 시민결사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시대에 기업결사에 적합한 의식을 가지고 국가를 상상하고 정치를 수행한 결과였다. 이명박은 기업가로서의 성공신화에 도취되어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기업으로 그리고 정치를 일종의 경영활동으로 오인하며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했고,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을 청와대에서 보낸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편협하고 낡은 국가관에 입각하여 정치리더십을 사사로이 행사했다. 요컨대 그들이 처해있는 냉정한 현실은 시대착오적인 정치적 상상력의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절대군주처럼 숭배하며 그들의 신민(臣民)이 되기를 자처했던 맹목적인 추종자들도 그들의 정치적 실패에 한몫 했다. 아마도 기성세대의 상당수는 그들을 국가의 아버지요 어머니로 상상했을 것이며, 자신들을 그들의 지엄한 명령을 따라야할 자식이나 백성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혁명 후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사회의 각계각처에서 적폐청산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노라면, 국가를 시민결사로 그리고 정치를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관계 및 법규의 공정한 적용으로 이해하는 시민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머지않은 장래에 법이 지배하는 성숙한 시민결사의 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기원해본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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