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무등산의 기운과 동림사의 겨울 공부

16세에 아버지 따라 화순으로
그곳 진사 만나 세상 넓음을 실감
들어앉아 과거시험 본격 준비
이듬해 겨울엔 형 정약전과 함께
동림사서 40일 동안 독서 정진
책 읽다가 깨달으면 끝없이 토론
산사의 맑은 정기가
다산의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다산이 과거공부를 했던 전남 화순 동림사 터에 세워진 다산 동상.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정민 제공
신혼의 과거 공부

16세 나던 1777년 10월 초, 다산은 화순현감으로 내려가는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길을 떠났다. 신혼의 부부는 2년 뒤인 1779년 2월, 다산이 상경할 때까지 햇수로 3년간을 떨어져 지내야 했다. 이때는 네 형제 중 다산만 부친을 따라갔다. 화순 관아에 딸린 곁채인 금소당(琴嘯堂)에서 과거를 위한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 지역에 사는 진사 조익현(曹翊鉉)이 새 사또의 아들을 찾아와 공부 이야기를 하고 갔다. 독서에 더 집중하게 하려는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배려였다. “쓸쓸한 대숲 속 집, 야인(野人) 찾음 기쁘도다. 멋진 선비 보았으니, 관아 문을 열어두리. 육경 얘기 한참 하고, 석 잔 술을 마셨다네. 나이 잊고 사귐 맺어, 마음 기약 시원하다.(蕭寥竹裏館, 頗喜野人來. 快士如今見, 官門自此開. 淋漓譚六籍, 牢落倒三杯. 好結忘年契, 襟期賴漸恢.)” 그를 만나고 나서 다산이 쓴 시다.

조익현은 호걸스런 인물로, 훗날 그가 세상을 뜨자 다산은 그를 두고 “이런 작은 고을에 왔는데도 이 같은 사람이 있으니, 남자는 사방을 노닐지 않을 수가 없다”고 술회했을 정도였다. 이후 성균관에서 7년간 거처하며 당대의 명사를 다 만나 교유했지만 조익현 같은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고도 했다.

화순의 봄날

그 해 겨울, 다산은 들어앉아 독하게 책만 읽었다. 화순은 오성(烏城)으로도 불렸다. 이듬해인 1778년 봄 2월에 쓴 ‘춘일오성잡시(春日烏城雜詩)’ 7수 중 첫 수는 이렇다.

봄 오자 대나무에 초록 그늘 짙은데

작은 동산 어디서든 새들이 우짖는다.

상자 속 책 점검하니 너무나 진부해서

‘산경(山經)’을 가져다가 글자를 풀이하네.

慈竹春來長綠陰, 小園無處不啼禽.

(자죽춘래장녹음, 소원무처불제금)

篋書檢點多陳腐, 閒取山經注字音.

(협서검점다진부, 한취산경주자음)

겨우내 맵짠 공부로 경서는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읽었다. 새봄을 맞아 기분 전환도 할 겸 지리서를 가져다가 글자에 주석을 달며 공부를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다산은 훗날 어린이 교육에 대해 쓴 ‘교치설(敎穉說)’에서도 “맛난 고기가 훌륭해도 두 번만 먹으면 물리고, 고운 노래가 듣기 좋아도 자주 들으면 하품 나는 법”이라며, “몇 달을 읽고 나서는 새로운 맛으로 바꿔주는 것이 슬기로움을 일깨우는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적벽과 무등산 유람

그 해 가을에는 부친을 문안하려고 네 형제가 모두 화순에 내려와 있었다. 형제는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인근 동복현의 물염정(勿染亭)과 적벽(赤壁)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이곳은 적벽강 30리 물길이 붉은 기운을 띤 절벽을 끼고 굽이굽이 흐르면서 도처에 절경을 빚어 놓은 곳이었다. 물염정에서 지은 시 두 수 중 둘째 수를 읽어본다.

구름 시내 몇 굽이 돌아서드니

어여뻐라 외로운 정자 보이네.

붉은 바위 노을 빛 서리어 있고

푸른 마을 날던 새 내려앉누나.

툭 트인 바람 난간 옷 걸어 두고

물가 꽃 향기롭다 닻줄을 묶네.

돌아오는 길에서 올려다보니

산머리엔 어느새 별을 세겠네.

雲溪屢屈折, 窈窕見孤亭.

(운계루굴절, 요조견고정)

赤石流霞氣, 靑村落鳥翎.

(적석류하기, 청촌낙조령)

掛衣風檻敞, 繫纜水花馨.

(괘의풍함창, 계람수화형)

試看歸時路, 峯頭已數星.

(시간귀시로, 봉두이수성)

아슬하게 솟은 적벽의 웅자(雄姿)에 반쯤 가린 하늘 위로 초저녁 별이 듬성듬성 떴다는 7,8구의 묘사가 압권이다.

며칠 뒤 즐거웠던 물염 적벽 나들이를 진사 조익현에게 자랑하자, 그가 말했다. “서석산을 꼭 가봐야 하네. 적벽은 여기에 대면 분 바르고 화장한 여자의 모습일 뿐일세. 눈은 잠시 즐겁겠지만, 회포를 열고 지기(志氣)를 펴려면 반드시 서석산을 올라야지. 그 우뚝한 자태는 거인과 위사(偉士)가 말없이 웃지 않고 조정에 앉아서 특별히 움직이는 자취를 볼 수 없어도 그 보람이 사물에 널리 미치는 것과 같다고 할 만하다네. 함께 가보세나.”

이렇게 해서 네 형제는 며칠 뒤에 다시 무등산에 올랐다. 무등은 신라 때 향찰 표기로, 무진(武珍)이라고도 쓰고, 읽기는 ‘무돌’로 읽었다. 무돌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다. 의미로 옮겨 서석(瑞石)이 되었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이 날의 유람이 네 형제가 웃으며 함께 한 마지막 여행이었다. 다산은 이때의 유람을 두 편의 유람기와 몇 수의 시로 기억 속에 간직했다.

동림사의 겨울 공부

1778년 11월, 다산은 둘째 형님 정약전과 함께 무등산 남쪽 자락 나한산(羅漢山) 만연사(萬淵寺)의 말사인 동림사(東林寺)로 들어가 40일간 집중 독서를 했다. 형제는 이듬해 봄 과거 응시를 위해 상경할 예정이었다. 정약전은 ‘서경’을 읽고 다산은 ‘맹자’를 읽었다. 동림사는 불경 공부하는 승려들이 모여 수도하던 절이었다.

형제는 첫눈이 싸라기처럼 내리고 냇물에 살얼음이 얼 무렵 들어와서 겨울을 났다. 새벽에 일어나 시내로 달려가 양치하고 세수를 했다. 식사 종이 울리면 승려들과 열 지어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저녁 별이 뜰 때는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며 시도 읊었다. 한밤중에는 승려들의 독경 소리를 들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방바닥에 무릎을 딱 붙이고 독서에 몰두했다.

전남 화순군의 이서 적벽 전경. 동복호로 댐을 막아 수위가 높아져 더 장엄한 절경을 이뤘다. 이형우 제공

다산은 이때의 밀도 있는 공부를 오래 잊지 못했다. ‘맹자’를 읽다가 깨달은 대목이 있으면 형님에게 들려주었다. 형님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며 동생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형은 또 ‘서경’을 읽다가 동생의 손을 붙들고 우리 임금과 백성을 요순(堯舜) 같은 임금과 그때의 백성으로 만들어보자며 가슴 뜨거워했다. ‘선중씨묘지명(先仲氏墓誌銘)’에 이날의 풍경이 흑백사진처럼 남아있다.

화순의 만연사 아랫자락 동림사 터에 형제의 독서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 서있다. 비석 옆면과 뒷면에는 당시의 일과를 기록한 다산의 ‘동림사독서기’ 전문이 새겨져 있다. 여러 해 만에 지난달 23일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다시 찾았다. 비석 맞은편에 다산의 ‘동림사에서 독서하며(讀書東林寺)’라는 시가 새겨진 빗돌이 있고, 소년 정약용이 책을 들고 선 입상이 봄 햇살을 맞으며 그 앞에 서 있었다.

비석에 새겨진 시는 이러하다. 해석은 새로 했다.

무등산 남쪽엔 절집 많은데

동림사가 특별히 그윽하다네.

이곳 골짝 운치 있음 사랑하여서

아침저녁 어버이 봉양 잠시 떠났지.

뗏목 띄워 푸른 시내 건너와서는

신 신고 푸른 뫼를 타고 올랐네.

그늘엔 싸라기 눈 흩뿌렸는데

키가 큰 상수리엔 찬 잎 달렸다.

구경타가 티끌 번뇌 다 사라지고

문에 드니 맑은 생각 일어나누나.

부지런히 경전 말씀 애써 읽으니

어버이 바람 위로하기 충분하였네.

새벽까지 잠도 감히 자지 못하고

목어(木魚) 치는 소리를 함께 들었지.

영달을 꾼 꿈은 아니라 해도

허랑방탕 지냄보단 외려 낫다네.

젊은 나이 재기를 믿고 있다간

늙어서 못난 꼴만 보이게 되리.

경계하여 헛되어 보내잖으리

세월 감이 참으로 허망하나니.

瑞陽多修院, 東林特幽爽.

(서양다수원, 동림특유상)

愛玆林壑趣, 暫辭晨昏養.

(애차임학취, 잠사신혼양)

橫槎渡碧澗, 躡履躋靑嶂.

(횡사도벽간, 섭이제청장)

淺雪糝陰坂, 冷葉棲高橡.

(천설삼음판, 냉엽서고상)

顧眄散塵煩, 入門發淸想.

(고면산진번, 입문발청상)

黽勉讀書傳, 庶足慰親望.

(민면독서전, 서족위친망)

未敢眠到曉, 同聽木魚響.

(미감면도효, 동청목어향)

非必慕榮達, 猶賢任放浪.

(비필모영달, 유현임방랑)

英年恃才氣, 及老多鹵莽.

(영년시재기, 급로다로망)

戒之勿虛徐, 逝景眞一妄.

(계지물허서, 서경진일망)

이때 밴 형제의 토론 습관은 훗날 흑산도와 강진 사이의 험한 뱃길을 오가면서도 편지로 계속 이어졌다.

무등산의 우뚝한 기상과 나한산 동림사의 그윽한 정밀(靜謐), 화순 적벽과 물염정의 호젓하고 어여쁜 풍경이 하나의 기운이 되어, 형제의 가슴 속에 무늬로 새겨졌다. 절벽 위로 뜬 초저녁 별과 산사에서 새벽 목어 소리를 듣도록 책을 읽다가 냇가 얼음을 깨고 양치하고 세수하던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강산의 맑은 정기가 다산의 폐부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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