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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했대” 주변 수군거림에 3년에 한번 꼴로 이사

입력
2018.04.03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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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주는 이웃들

“근본없는 아이… 생부모 찾을 것”

혈연중심 탓 불편한 시선 쏟아져

양육부모 “주변 오해에 가장 힘들어”

#편견 만드는 미디어

입양, 드라마 대부분 부정적 소재

친부모 존재엔 환상적 의미 부여

학대 사건 터지면 싸잡아 비난

#별반 다를 게 없는 가족

둘째라 더 애틋하고 사랑스러워

양육의지 가장 중요한 것 깨달아

“기른 정 통해 가족 만들어져요”

안중선(맨 왼쪽)씨 부부는 2013년 공개입양으로 아들을 만났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안씨의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부루마블 게임을 즐기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안씨, 아들 희래군, 딸 희랑양, 부인 조혜숙씨. 오대근 기자
안중선(맨 왼쪽)씨 부부는 2013년 공개입양으로 아들을 만났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안씨의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부루마블 게임을 즐기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안씨, 아들 희래군, 딸 희랑양, 부인 조혜숙씨. 오대근 기자

“엄마,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어?”

조혜숙(47)씨는 2년 전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들 희래(6ㆍ당시 4)의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는 입양을 통해 아들을 만난 ‘입양가족’이다. 공개 입양을 했고, 아이에게 생모의 존재를 굳이 숨기지 말자고 다짐했던 터였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조씨가 꺼낸 답변. 그러나 희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잖아”라고 소리치며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2주 뒤, 희래는 조씨에게 다시 물었다.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거 맞지?” 이번에 조씨는 입양가족모임에서 만난 선배 부모들과 함께 고민한 답을 들려줬다. “모든 아기는 여자의 뱃속에서 태어나. 아기집이 있는 여자가 낳을 수 있거든. 엄마도 누나도 할머니도 여자니까 아기를 낳을 수 있지. 희래도 여자가 낳았어. 그리고 너를 기다리던 엄마와 아빠를 만나 가족이 된 거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때가 되면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런데 출산이 아니라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된 이들에게는 답하기 쉽지 않은 난제다. 생모의 존재뿐 아니라 핏줄을 우선하는 사회적 편견을 마주하는 법도 함께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입양 ‘가족’은 특별하지 않다

조씨와 안중선(43)씨 부부가 희래를 입양한 건 2013년이었다. 희래가 태어나 100일이 채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 큰 딸 희랑(12)이가 동생이 생기길 간절히 원했다. 난산 끝에 희랑이를 낳은 터라 동생을 낳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입양을 선택했다. 희래를 만나기 위해 준비한 기간만 꼬박 11개월. 입양 아동 보호를 위해 국가의 관리ㆍ감독을 강화하도록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직후여서 소득증명서, 전세계약서, 신용정보조회서, 범죄경력조회서, 약물ㆍ알코올중독 검사 결과를 포함한 건강진단서, 최종학력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입양 상담, 서류제출, 심리검사 등을 거쳐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고서야 ‘부모가 될 자격’이 주어졌다.

부부는 희랑이를 낳을 때와 깐깐한 입양절차를 통해 희래를 입양하는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부모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양육 의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엄마는 낳는 순간부터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첫 아이를 사흘 간 진통 하며 어렵게 낳아서 그런지 제 몸이 아프고 힘들다는 생각이 앞서고 낳자마자 절절한 모성애가 샘솟지는 않았어요. 낯설었던 아기가 100일쯤 지나 저와 교감하기 시작할 때 제 새끼, 제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입양 가족이 되는 과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씨는 “희래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도 역시 낯설었다”며 “그래도 내 몸이 아프지 않아서인지 둘째를 키우면서는 애틋한 마음이 더 빨리 생긴 것 같다”고 웃었다.

아빠도 ‘기른 정’을 통해 가족이 만들어짐을 실감한다고 했다. 안씨는 “남자는 출산의 고통을 직접 겪지 않아서인지 두 아이 모두 첫 만남은 생경했다”며 “첫째 때는 덜컥 아이가 태어나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두려웠지만 둘째는 충분한 준비가 된 후여서 부담감도 없고 아이가 사랑스러웠다”고 말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옛말은 편견인데…”

한국 사회의 혈연 중심 정서를 잘 알면서 공개입양을 택한 이유는 뭘까. 부부는 입양이 죄도 아닌데 출생을 숨기며 주변인들부터 고립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울 때 병원에만 가도 가족 병력을 묻는데 때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혈연을 중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입양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조씨 부부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거나,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며 끌끌 혀를 찬다고 했다. 두 가지 반응 모두 가족들에겐 큰 상처다. “가족이 늘어난 일은 축하 받을 일이긴 해요. 그런데 ‘착한 일’을 했다고 하는 건, 우리 희래를 너무 불쌍한 아이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안씨) “희래는 우리와 가족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잘 내리고 있어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입양아들이 마치 뿌리를 다른 곳에 두고 온 것처럼 ‘근본 없는 아이를 키운다’는 말로 상처를 주는 걸까요?”

그래서 부부는 ‘입양’의 의미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많다. 희래가 처음으로 ‘나는 어떻게 태어났느냐’고 질문했을 때 답을 망설인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조씨는 “유아기 자녀에게 엄마는 세상을 보는 창과 같은데 ‘다른 엄마가 낳았다’는 답은 상실감을 줄 뿐 아니라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그대로 가르치는 것 같아 명쾌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때 조씨가 활동하는 입양가족모임의 선배 홍지희(48)씨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모든 아이는 여자의 뱃속에서 나오고, 출생 후 부모를 만나는 것이 이치”라고 조언을 해줬다. 부모나 엄마가 되려는 뜻이 없어도 남녀의 육체적 관계로 임신ㆍ출산을 할 수 있지만, ‘가족 관계’는 최소 20년간 아이의 성장과정을 함께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는 뜻에서다. 조씨는 “엄마가 낳지 않았다는 설명에 울던 아들이 모든 아이들의 출생 과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입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여느 대다수 부모들처럼 조씨의 친정 어머니도 희래를 입양하기 전 극구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희래의 든든한 우군이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고 한다. “내가 세상을 헛살았나보다. 핏줄이 아니어도 자기 자식이 될 수 있는 거구나.”

입양 가족 향한 ‘불편한 시선’

하지만 입양가족들이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부모ㆍ형제나 친척들로부터 받아야 하는 불편한 시선은 상상 이상이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입양부모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입양부모의 28.7%는 양육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주변의 오해’를 꼽았다. 이들이 경험한 편견의 내용은 ‘입양부모는 좋은 사람’, ‘낳은 자식처럼 키울 수 없다’, ‘입양아는 반드시 생부모를 찾아간다’, ‘입양아는 사춘기에 문제를 일으킨다’ 등으로 다양했다.

이런 시선을 피하기 위해 ‘비밀입양’을 선호하는 가족들도 여전히 많다. 강원 지역에 사는 박선화(가명ㆍ50대)씨는 첫 아이를 낳은 후 자녀 두 명을 입양했는데, 자녀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주변에 입양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 박씨는 “갓 입양을 했을 때 동네 이웃들이 알게 됐는데 나와 남편에게는 마냥 ‘사랑스러운 아이’임에도 그들은 ‘불쌍한 아이’로 대해 속이 상했다”며 “교육상 아이를 훈육할 상황이어서 혼을 내도 이웃들은 ‘입양아와 친자식을 차별한다’고 수군거렸다”고 했다. 박씨는 그 일을 겪은 후 입양사실이 공개되는 게 싫어 3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니고 있다.

입양아들이 차별적 시선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곳 중 하나는 학교다. 10여년 전 입양을 한 강모(40대)씨는 초등학생이던 딸이 수업시간에 가정의 형태에 대해서 배우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강씨는 “선생님께서 양친 가정, 한 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조손 가정 등을 설명하던 중이었는데, 친구들이 딸에게 ‘너는 원래 부모가 한 명(미혼모)이어야 맞는 게 아니냐’고 놀렸다”며 “이후에 그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입양에 대해 잘 설명했더니 딸에게 사과를 하더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입양사실을 알게 됐다는 김모(21)씨도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에게서까지 상처 받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 ‘가짜 엄마’라고 놀리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중학생 때 담임선생님께서 ‘부모님이 직접 낳은 형과 너를 차별하지 않느냐’고 공공연하게 물었다”고 했다.

편견 낳는 미디어… ‘편견 없애기’나선 부모들

TV드라마에서 입양을 부정적 소재로 삼는 것도 입양 부모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 신용운 전국입양가족연대 대표는 “대다수 드라마에서 생부모의 존재에 환상적 의미를 부여하고 결국엔 입양아가 생부모를 찾아 떠나도록 그리며 ‘혈연 중심’ 고정관념만 재생산한다”며 “현실에서는 입양아의 친권을 갖고 있는 ‘친부모’가 입양부모여서 드라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낳아준 부모가 찾아와 아이를 데려가는 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부 입양아동 학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모든 입양부모’를 싸잡아 범죄자처럼 여기는 시선도 여전하다.

입양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아예 부모들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공개입양가정 부모들이 모인 ‘물타기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현재 조씨 아들 희래의 사연을 담은 반편견 입양 동화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홍지희 물타기연구소장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데 물의 양이 많아지면 편견이 희석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우리사회가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존중하려면 입양 가족뿐 아니라 미혼모에 대한 차별적 태도도 함께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이우진 인턴기자 (숙명여대 법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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