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띄운다는 핑계로
스킨십 유도 게임 이어지고
진행자 성적 농담까지 만연

2012년 대학 입학 이후 한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는 A(25)씨는 봄이 되면 고민에 빠진다. 재단 주최 장학생 수련회에 의무 참석해야 하는데, 오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마다 학생들 상대로 온갖 스킨십을 유도하는 게임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지난해엔 잘 알지도 못하는 학생과 ‘섹시댄스’를 춰야 했다.

‘미투(#Me Too) 운동이 활발한 올해는 다르겠지’라는 기대도 지난달 수련회에서 처참히 깨졌다. 이날 강사는 ‘남녀가 안아서 풍선 터뜨리기’ 게임을 진행했다. A씨는 “재단 사람들이 바로 앞에 있어서 아예 안 할 순 없는 노릇이었고, 다른 학생들도 다들 ‘이것 때문에라도 여기 오기 정말 싫다’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이 게임은 한 레크리에이션 관련 홈페이지에 ‘사랑폭발’이란 이름으로 친절히 소개돼 있다.

수련회 등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나 진행자들이 하는 스킨십 유도 게임, 성적 농담에 참가자들이 불쾌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분위기가 미투 열풍에 사회 전반으로 깔리고 있지만, 분위기를 띄운다는 명목 아래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성희롱이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웃음을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여전히 성적 농담은 쉽게 용인된다. 얼마 전 한 가수 생일파티 겸 팬미팅에 간 문모(29)씨는 본 공연 전 무대에 오른 진행자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성희롱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이 진행자가 지방에서 올라온 커플에게 “오늘 막차 끊기겠네. 주변에 (모텔) 많은데. 다 알아”라고 말하는가 하면, 여성 관객들을 향해서는 “여기 음기가 가득하다”고 ‘농담’을 했다는 것이다. 문씨는 “공연과는 전혀 무관한 성적 농담을 계속했다”고 했다.

#“미투가 유행이니 좀 그런가”
사회 정화 운동 의미도 비하

아예 미투 운동 자체를 장난 삼아 얘기하기도 한다. 대학생 석모(25)씨는 최근 한 행사에서 진행자가 관객에게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라고 하면서 “요새 미투가 유행이어서 이런 건 좀 그런가”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는 “너무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굳이 미투를 ‘유행’이라고 부르면서 장난스럽게 얘기했어야 했나 싶다”고 말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들은 한편으로 억울하다고 한다. 한 강사는 “실내에서 수백 명을 상대로 한두 시간 만에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면 어쩔 수 없을 때가 많다”라며 “게임을 하면서 농담처럼 한 말까지 지적하면 행사 자체를 진행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한국레크리에이션협회 관계자는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있어 스킨십 같은 경우 먼저 양해를 구하거나 게임 자체를 생략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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