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제주도문예회관 앞마당에서 제25회 4·3문화예술축전의 일환으로 4·3 역사거리굿 '해방'이 펼쳐지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학살의 현장에도 햇빛은 비쳤다. 핏물에 젖은 모래알이 그 빛에 반짝였다. 죽을 차례를 기다리며, 바들바들 떨었을 9살 여자아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명을 키워내던 마을의 옴팡밭(오목하게 패인 밭)은 그렇게 순식간에 죽음의 밭이 됐다. 고완순(78)씨는 제주4ㆍ3사건을 그렇게 피냄새 어린 햇살로 기억했다.

“오후 한 3, 4시쯤 됐는가. 저희 가족이 옴팡밭이라는 데 끌려갔습니다. 횡대로 세워놓고 총을 쏜 것 같아요. 엎어진 사람, 자빠진 사람, 머리통이 사타구니에 들어간 사람… 시신이 즐비하게 그냥 막 쓰러져 있는데 그 다음에 저희들이 가서 앉았어요. 해가 구름에 싹 가렸다가 햇빛이 반짝하고 나왔다가 구름으로 들어가고 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흙이 피에 다 젖어서 햇빛이 나올 때는 흙이 유리알처럼 햇빛에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피가….”

생존자 고씨가 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전화 인터뷰에서 증언한 4ㆍ3사건의 현장이다. 고씨는 1949년 당시 9살이었다. 고씨가 기억하는 4ㆍ3의 시작은 이랬다. “46년, 47년 즈음에 인구가 갑자기 6만 명 늘었는데 이북에서 온 사람들이 있으니까 왜정 때 공출됐는데 또 막 쌀을 걷어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 반발로 시작해서 4ㆍ3으로 들어가면서 막 어른들이 웅성웅성웅성 하고 있어요. 김녕에서 함덕으로 오는 군인부대에 군인을 싣고 가는 것을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군인을 두 명을 죽여버렸대요. 그 2명을 마을 유지들이 8명이서 우마차 2개에다가 하나씩 시신을 싣고 부대로 가져가니까 8명 중에서 경찰관 가족 한 사람은 살리고 7명은 다 죽였어요.”

그 일로 북촌마을은 ‘빨갱이 마을’로 낙인 찍혔다. 군인들은 운동장에 마을 사람들을 한데 끌어다 모았다. 덜덜 떨며 끌려가 보니 운동장이 꽉 찼더란다. 앞에 서 있던 마을의 남자들이 픽픽 쓰러지는 걸 어린 눈이 목격했다. “총소리가 다다다닥… 총을 막 사격하니까 저희들은 땅바닥에 엎어져서 기었어요. 뭐가 뒤에 탁 걸리는 것이 있어서 돌아다 보니까 여자 고무신을 신은 발이 보이더라고요. 젊은 엄마가 죽었는데 아기가 배 위에서 엄마 젖을 찾고 있어요. 2, 3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 아이였어요.”

군인은 엄마를 붙잡고 무섭다며 우는 3살 남동생의 머리도 내려쳤다. “군인이 참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간나새끼, 지금 죽어도 죽을 거. 나중에도 죽을 거’ 하면서 머리통을 2번을 가격을 했어요. 그 동생은 52년도 8월 달에 죽었습니다. 머리에 계속 물 차가지고 약도 하나도 못 쓰고….”

옴팡밭에 끌려간 고씨 가족은 갑자기 온 지프차에서 전한 ‘사격 중지’ 명령에 겨우 살아남았다. “군인들이 하는 말이 ‘이 간나새끼들, 파리새끼보다 목숨이 더 길다’라고. 40명인지 30명인지 우리하고 끌려간 줄은 다 살았어요.”

고씨 기억으로, 하루에 죽은 마을 사람이 380명. 그 며칠 새 죽은 이들이 600명은 될 것이라고 고씨는 말했다. 제주4ㆍ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4ㆍ3사건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2만5,000∼3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게 살아남고도 수십 년을 연좌제가 무서워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얼마 안 됐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하면서 좀 이제 밝혀지고 이제는 살만 한 것 같아요. 속에 거 털어놓으니까.” 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월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해 과거 국가권력 잘못에 대해 사과하며 도민들을 위로했다.

고씨는 이날 방송에서 “(4ㆍ3사건으로) 꿈도, 공부하는 시기도 다 놓쳐버렸다”며 “밥도 너무 굶어서 저는 배고픈 것이 (아직도) 트라우마”라고 말했다.

3일로 70주기를 맞는 제주4ㆍ3사건은 국가폭력에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달하는 인명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까지 발생한 소요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 당한 사건으로 제주4ㆍ3특별법은 정의한다.

제주4ㆍ3사건 70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가 전국 20곳에 설치된다. 사진은 제주 4ㆍ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4ㆍ3희생자추념식에서 유족들이 분향하는 모습. 제주=김영헌 기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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