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유기견 구조에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과 교육생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충남 온양 장례식장에 1일 조문객들이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1,4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영화 ‘신과 함께’는 소방관 복장의 주인공이 줄곧 등장한다. 원작 웹툰 만화에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주인공을 소방관으로 대체한 것을 두고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 반면 2시간 남짓 영화에서 귀인이라는 선한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소방관만큼 어울리는 직업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도 팽팽했다. 한국인이 존경하는 직업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소방관을 부각시켜 흥행 성공을 견인한 측면도 분명 있다.

화재를 진압하는 직업을 뜻하는 소방관은 로마시대에도 있었다. 해방 노예를 중심으로 소방관을 선발하고 대장에는 로마군단 출신 퇴역 군인을 임명, 화재 예방과 진압에 주력했다.

17세기 동양에서는 일본이, 서양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이 잇따라 현대적 개념의 소방관 제도를 만들었다.

화재 진압이 주 업무이던 소방관은 다양한 민원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업무와 맞닥뜨리는 사례가 많아졌다. “우리 집 앞마당에 생긴 벌집을 제거해달라”는 민원은 귀여운 애교에 불과하고, “우리 집 문이 잠겼으니 열어달라”며 철물점에나 해야 할 민원을 119에 전화하는 일이 다반사다. 실제 지난 해 전국 소방관서에서 구조 출동한 80만 여건 중 단순 생활민원이 절반을 넘는 42만 여건에 달했다고 한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119 상황실에서 수도 없이 걸려오는 장난 전화에 대응하는 소방관의 모습을 내 눈으로 목격한 적도 있다.

식당에 진입한 멧돼지를 밖으로 몰아 내고, 방충망을 뒤집어 쓴 채 벌집을 떼어내는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소방관을 그저 ‘친근한 이웃 같은 이미지’로 인식하고, 당연한 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화재진압, 구조 구급 등 현장 활동 중 목숨을 잃은 소방관이 50명을 넘을 정도로 위험이 일상화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한 해에 무려 9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이 중에는 벌집 제거 도중 혹은 고드름 제거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도 있었다.

다중 이용 건물이 많아지고 전열기구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화재의 위험성은 날로 커지고, 사고 규모와 인명 피해도 대형화하고 있다. 이에 맞춰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소방활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수요에 맞추려면 소방 인력과 장비를 대폭 확충해야 하지만 예산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결국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긴급을 요하지 않는 현장 출동을 자제하는 게 최선이다.

소방당국은 이미 2011년 ‘단순 생활 민원’은 출동 거절할 수 있다는 법 개정을 했지만 구체적인 출동 거절 사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 다양한 민원을 우려해 적용하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 소방재난본부가 ‘동물구조’ ‘단순 문 개방’ 등 비긴급 민원의 출동을 거절하고 나섰고, 전국 시도 소방본부도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적용키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참에 소방업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도 고쳐야 한다. 지난 해 제천 화재 사고에서 보듯, 일반 차량이 소방 도로를 막아 진입을 방해하거나 소방호스를 연결하는 급수관을 가리는 주차는 자제해야 한다.

지난 달 30일 충남 아산 국도에서 소방관 1명과 임용을 앞둔 예비 소방관 등 3명이 도로 위 유기견을 구조하려다 차에 치여 숨졌다. 이들이 왜 모두 여성이었고, 개를 구조하기 위한 출동이 긴급 사안인지 문제를 떠나 너무도 황망한 사고여서 말문이 막힌다. 긴급출동 범위 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더욱 안타깝다.

소방관들은 하루하루를 생사를 넘나들고 있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슈퍼맨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거는 소방 민원 전화가 정작 중요한 소방업무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숨 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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