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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모국서 만난 아내… 친부모도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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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모국서 만난 아내… 친부모도 찾고 싶어요”

입력
2018.04.02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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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힐튼 총주방장 그런험씨

4세 때 가족 잃고 덴마크로 입양

전 세계 돌며 호텔 요리사로 근무

7년 전 서울서 부인 가윤경씨 만나

아들 낳고 생모에 대한 생각 커져

실종아동 찾는 기관에 DNA 등록

그런험(오른쪽) 총 주방장과 아내 가윤경씨. 가씨를 만난 지 7년 만에 20여㎏이 빠진 그런험씨는 “예전 생활도 재미있었지만 가정을 꾸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보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그런험(오른쪽) 총 주방장과 아내 가윤경씨. 가씨를 만난 지 7년 만에 20여㎏이 빠진 그런험씨는 “예전 생활도 재미있었지만 가정을 꾸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보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제가 생각해도 ‘영화 같은 이야기’에요.”

부인 가윤경(42)씨는 남편만큼이나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가씨의 남편은 올 1월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주방장에 부임한 앤더슨 호 그런험(49)씨. 22세에 호텔 요리사를 시작해 덴마크 코펜하겐, 이집트 카이로, 터키 이스탄불, 호주 시드니 등 전 세계 글로벌 특급 호텔을 거친 28년차 베테랑으로 서울 근무는 2011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에 이어 두 번째다.

20일 남대문로 밀레니엄 서울힐튼에서 만난 그런험씨는 두 번째 한국 근무에 대해 “신나고 행복하다. 그때와 비교해 제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아기도 생기면서 가족을 꾸렸잖아요. 아내와 소도시를 돌아다니며 한국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골목마다 있는 노포의 음식 맛보는 것도 요리사로서 귀한 경험이고요.”

그런험 주방장이 아내를 만난 건 2011년 한국 첫 번째 근무지였던 반얀트리에서다. 그즈음 그는 한창 골프에 심취했고, 골프에 관한 조언도 해주고 같은 ‘외국인 근무자’로 말도 통하는 골프 매니지먼트팀 팀장을 자주 찾았다. 그런험은 “사실 그때는 골프 생각이 가득해, 아내 첫 인상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팀장이 아내를 ‘매니저’라고 정식 소개 시키면서 제대로 얼굴을 봤을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매일 매일 호텔 내 골프 클럽에 오는 그를 보며 가윤경씨는 “중국인처럼 생겨서 왜 영어밖에 못하냐?”고 상사에게 물었고 그의 ‘과거’를 듣게 됐다. 그런험 총 주방장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었던 것. 4세에 대전역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잃은 그는 이튿날 곧장 아동보호소에 맡겨졌고, 6개월만에 덴마크로 입양됐다. 요리사가 되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유독 한국과 인연이 없던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동료가 개장한지 얼마 안 된 서울 호텔을 추천했고, 그런험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한국행을 택했다. “중국 베이징, 하이난에서도 근무했는데 확실히 공항 공기부터가 달랐어요. ‘여기가 내 집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한국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한 그런험이 매일 매일 골프 클럽에 들렀건만 가씨에게 그는 ‘직급 높은 요리사’였다. 퇴근 후 패스트푸드와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그런험은 110㎏의 거구였고, 가씨는 자신의 상사이자 그런험의 ‘외국인 친구’가 함께 한 ‘3인 데이트’에만 3번을 나갔다고. 그런험은 “(서울 첫 근무) 9개월 후, 다시 한국을 떠나게 됐을 때 ‘이 공항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서글픔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상사가 스카이폰을 쓰냐고 묻더라고요. 그런험이 저랑 통화하고 싶다면서” 막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가씨는 회화 실력도 늘릴 겸 그런험과 매일 밤 통화했다. “못 보니까 애틋해지더라고요.” 하루가 다르게 감정이 무럭무럭 자랄 무렵, 비자 문제로 그런험이 한달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상사와 두 사람은 또 ‘같이’ 만났다. “같이 술 마시면서 바에 있는데 갑자기 그런험이 비행기표 시간을 늦추겠다고 하더라고요. 한데 실패하고 다음날 출국했죠.” 2주 후 그런험은 중국 왕복 티켓을 보내왔고, 3박 4일 여행 후 프러포즈를 했다. 가씨는 “(여행) 2주 후에 한국 와서 저희 부모님 만나 허락 받고 가겠다더라”면서 “만나서 혼인신고까지 하는데 두 달 걸렸다”고 말했다. “(혼인신고) 두달 만에 제가 일 그만두고 중국으로 갔죠. 그리고 6개월을 정말 엄청나게 싸웠어요(웃음).”

밀레니엄 힐튼 호텔 주방장 앤더슨 그럼험씨와 부인 가윤경씨가 2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밀레니엄 힐튼 호텔 주방장 앤더슨 그럼험씨와 부인 가윤경씨가 2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그렇게 싸우면서 그런험은 아내에게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창시절 축구선수를 했다는 것과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빠 다섯 형제가 돌아가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 “제가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음식 만드는 데도 재주가 있다는 걸 알아본 ‘엄마가’(그런험이 인터뷰 내내 유일하게 구사한 한국어였다)” 친구 식당에 3일간 그런험을 인턴으로 취직 시켰고, 이후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

아내 가씨는 한국어로 쓰인 그런험의 입양아 카드를 읽어주었다. “결혼 후 남편이랑 전국 투어를 했어요. 대전, 대구, 부산, 제주까지. 잃어버린 대전 주소지를 찾아가 ‘이쯤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고 사진도 찍고요. 간식 사서 성노원 찾았는데, 거기 아이들이 우리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더라고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예의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생모를 찾지 않겠다’고 고집한 그런험은 2년 전 아들을 얻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실종아동 찾는 기관에 자신의 DNA를 등록했다. 가씨는 “남편이 항상 ‘너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본인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아직 생모를 찾진 못했지만,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부모를 찾은 토비 도슨을 보며 그런 행운이 자신들에게도 깃들기를 바라고 있다고. 앤더슨 호 그런험 총 주방장의 한국 이름은 강광호. 덴마크 이름 속 ‘호’는 그의 한국 이름의 한 글자를 따온 것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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