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으로 본 선택 메커니즘

피로 줄이기 위해 습관 만들지만
선택 줄이면 다시 결정욕구 발생
너무 많은 선택지에선 ‘결정마비’
선택 폭 넓다고 최적의 결정 못해
접시 위 초밥 중 하나를 먹고 나면 곧 다른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 또는 지금 먹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상대방이 먼저 먹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같은 것이 ‘먹는 전략’을 만들어내고 결정을 끌어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눈앞에 20개의 초밥이 있다.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제일 먼저 먹는가, 아니면 아껴뒀다 마지막에 먹는가. 무의식 중 젓가락이 향하는 곳에도 실은 행동경제학, 즉 인간이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공식이 숨어있다. 접시 위 초밥 중 하나를 먹고 나면 곧 다른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 또는 지금 먹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상대방이 먼저 먹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같은 것이 ‘먹는 전략’을 만들어내고 결정을 끌어낸다는 것.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공저 ‘1.4킬로그램의 우주, 뇌’에서 이 초밥 사례를 소개하며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언제 선택할 것인가’ 하는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등굣길이나 출근길 스마트폰 음악 재생목록 중 어떤 곡을 가장 먼저 들을지, 식탁 위 여러 음식 중 무엇을 먼저 맛볼지,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실지 아메리카노를 마실지를 결정할 때도 비슷한 사고과정을 거친다.

우리는 선택 앞에 왜 ‘결정피로’를 느끼는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할 때
두뇌 속 신경세포 활성화… 에너지 사용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의사결정을 할 때 고민에 빠지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스스로 가장 즐거운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정을 앞두고 두뇌에서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결정의 순간 머릿속 측좌핵이나 앞이마 옆에서는 두 가지 신경세포가 활성화하며 우리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먼저 자신이 달콤한 맛을 원하는지, 아니면 허기를 달래기 위해 포만감을 느끼고 싶은지와 같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따질 때는 측좌핵의 도파민계 신경세포가 마구 활동한다. 동시에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보면 뇌의 중심부 근처에 존재하는 측좌핵의 오피오이드(opioid)계 신경 세포들이 활성화한다.

생각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2~1.4㎏인 두뇌는 몸무게의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섭취하는 에너지의 20% 이상을 사용한다. 일상에서 무심코 쓰던 ‘결정피로’나 ‘선택피로’라는 표현은 이런 뇌의 남모를 고통을 잘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오늘 점심 뭐 먹지” 사소한 고민도
에너지 사용하는 두뇌활동
피로 줄이려 습관 만들고
선택 줄이면 다시 결정욕구 발생

결정을 위해 뇌가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우리 몸에서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까. 생각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2~1.4㎏인 두뇌는 몸무게의 2%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섭취하는 에너지의 20% 이상을 사용한다. 일상에서 무심코 쓰던 ‘결정피로’나 ‘선택피로’라는 표현은 이런 뇌의 남모를 고통을 잘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결정피로를 줄이기 위해 두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것이 ‘습관’이다. 매 순간 고민을 거듭하는 대신 그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선택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것이다. 점심메뉴를 고르는 대신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구내식당 메뉴 중에서도 ‘500원 더 비싼 고급 메뉴’나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기준으로 손쉽게 선택하는 습관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습관에 따라 행동하다 보면 두뇌는 오히려 선택의 즐거움을 달라고 요구한다. 무언가 결핍됐다고 인식한 뇌가 언제, 무엇을 먹을지에 관한 욕망을 만들어 스스로 결정하려고 한다는 것. 며칠간 구내식당이나 한 가지 메뉴만 나오는 백반집을 즐겨 찾은 뒤에 문득 강렬하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는 현상을 떠올리면 된다.

결정비용의 사회학
너무 많은 선택지, 마비 불러와
최적의 선택 못할까 우려ㆍ후회
자유의 극대화가 불만족 초래
당신이 여러 선택지를 볼 때 두뇌에서는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며 우리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할 때는 측좌핵의 도파민계 신경세포가 마구 활동한다. 동시에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보면 뇌의 중심부 근처에 존재하는 측좌핵의 오피오이드(opioid)계 신경 세포들이 활성화한다. 사진=서울아산병원제공

선택이 주는 피로로 인해 뇌가 선택을 포기해버리는 현상은 ‘결정마비’라는 사회학적 용어로 설명된다. 미국 스위스모어대학교 사회행동학 교수인 배리 슈워츠는 저서 ‘선택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choice)’에서 “너무 많은 선택지는 자유보다 오히려 마비를 가져온다”고 역설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면 피로감이 너무 커진 나머지 선택이 주는 만족감을 크게 줄인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자유가 극대화되거나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장보기나 서비스 이용하기와 같은 단순 소비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에도 많은 선택지가 항상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면 선택 자체를 힘들어하는 이치다.

이는 통계로도 잘 드러난다. 미국 소재 2,000개 기업 직원 100만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퇴직연금 투자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개의 투자 방식을 추가로 제안받을 때마다 선택을 포기하는 직원은 2%씩 늘어났다. 이런 방식으로 퇴직연금 투자 주체인 직원들은 최대 5,000달러의 손실을 보게 됐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결정을 마비시킨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에 허덕이는 사람들
차라리,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
후회하지 않으려 ‘미련’ 결정비용 더 내
첫 돌에 아기의 장래를 가늠해보기 위해 '아무거나 잡으라'며 선택을 강요(?)하는 돌잡이는 어쩌면 아기에게 최초의 선택마비를 유발하는 행사인지도 모른다. 장수와 건강을 상징하는 명주실, 학자나 교육자를 의미하는 붓, 높은 관직을 기원하는 마패, 복이 가득하길 축복하는 복주머니, 부유함을 상징하는 엽전에서 비롯된 지폐, 여기에 요즘에는 연예인 꿈나무를 알아보는 마이크까지. 첫 선택 앞에 놓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재휘 중앙대 소비심리학과 교수는 “선택의 대안이 많아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내가 못 가지게 되는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뜻”이라며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에서는 선택할 대안이 많아질수록 그 잠재적 효용이 커져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행동심리학의 측면에서 볼 때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것은 오히려 불만족을 강화시킨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이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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