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처벌 미흡한 ‘잔혹 범죄’ 두 가지

입력
2018.03.30 16:49
26면
0 0

데이트 폭력ㆍ미성년 대상 성범죄 심각

인간 파괴적 피해에 처벌은 ‘솜방망이’

엄중히 처벌하고 예방책 실효성 높여야

‘법감정’은 법 적용, 또는 집행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적이고 감정적인 느낌을 가리키는 말이다. 판사나 검사 같은 전문가들의 법적 판단력을 가리키는 ‘리걸 마인드(legal mind)’와 대조된다고 하겠다.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아먹고 수천억 원의 예산을 쓸모 없이 날린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정직 3개월뿐이라면, 사람들은 처벌이 너무 가볍다며 분노할 것이다. 처벌이 가볍다는 바로 그 느낌, 그게 법감정인 셈이다.

범죄 처벌에 있어서 일반인의 법감정은 종종 법원의 결정과 적잖이 어긋난다. 대개 근대 형법의 기본인 죄형법정주의나 형벌불소급의 원칙 등에 따른 양형의 한계가 그런 괴리의 원인이 되곤 한다. 하지만 원칙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벼운 양형을 납득하기 어려운 범죄가 많다. 그중에도 특히 더 엄한 처벌이 절실하다고 느껴지는 범죄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와 주로 여성이 피해자인 ‘데이트 폭력’ 등 두 가지다.

최근 SNS에 CCTV 동영상이 나돌았던 부산 데이트 폭력 사건은 할 말을 잃을 정도다. 가해자가 미숙한 젊은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심했다. 남들은 모를 격렬한 감정 문제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연약한 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거의 벌거벗겨진 채 실신한 사람을 질질 끌고 다닌 건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지금쯤 가해자도 반성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상의 잔혹성 앞에서는 어떠한 이해나 관용의 안간힘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무슨 도덕군자도 아닌 이상 남에게 함부로 윤리적 재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인의 성범죄엔 치가 떨린다. 특히 어린 여학생을 유린한 학교 교사가 사랑이었느니 뭐니 하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걸 보면 솔직히 그 아둔한 입을 짓이겨 주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 햇살처럼 깔깔거리며 별처럼 영롱하게 자라 엄마가 돼야 할 소녀의 영혼을 누더기로 만들어 고갈시키는 그 범죄의 사악함은 살인강도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해자 처벌은 허탈할 정도로 가볍다. 교육부 ‘성 비위(성범죄) 교원 현황’에 따르면 2010년 이후 481명의 교사가 성범죄로 징계를 받았다. 절반 이상인 260명(54%)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미성년 성범죄 교사 61명을 포함해 182명(38%)의 성범죄 교사가 여전히 재직 중이다. 성범죄 교사의 30% 내외가 경징계(견책ㆍ감봉)를 받았을 뿐이고, 파면이나 해임되고도 교원소청을 통해 학교로 돌아간 사람이 소청자의 10%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스토킹ㆍ데이트 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해 관련 처벌을 강화키로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여자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A(39)씨에게 법원은 ‘우발적 사건이고, 피해자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새벽 3시에 혼자 사는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 두 시간 동안 늑골이 부러질 정도로 폭행한 한 의학전문대학원 학생에겐 벌금 800만원 선고가 고작이었다.

법이 객관적 피해만 따지거나 작량 감경에 따라 가해자 처벌을 미적거리는 동안 집계된 사건만 따져도 교사 성범죄가 사흘에 한 건이고, 한 달 평균 7명의 여성이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당장 부산 데이트 폭력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지난 29일엔 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다가 여섯 시간에 걸쳐 모텔에 갇힌 채 폭행당하다 5층 창문 밖으로 추락해 숨졌다. 베란다에 어지럽게 남은 지문은 급히 탈출을 시도한 흔적일 수도 있다니, 피해자가 얼마나 지옥 같은 상황을 겪었는지 짐작이 간다.

야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여성과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나 폭력에 대한 무감각,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사건 처리, 섣부른 온정을 관용으로 착각하는 법원의 느슨한 처벌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여전히 살아 있는 미개의 잔재다. 경종을 울릴 무자비한 처벌과 예방의 실효성을 높일 획기적 방안이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