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부이지만 저는 지금 성당에서 사목하지 않고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관계로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만 쉽니다. 하여 다른 신부들은 주말이 바쁜데 저는 주말이 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그래서 주말을 이용하여 피정(避靜, 천주교에서 영적으로 자신을 가다듬기 위해 일상을 떠나 고요함 가운데 머물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의 시간을 갖는데,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보통 조용한 곳이나 시설에 가서 피정을 하지만 저는 비용도 줄일 겸 봄의 자연과도 어울릴 겸 걷는 피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철로 가평이나 양수리 같은 곳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걸으며 피정을 하는 겁니다. 지난달에는 대성리에서부터 걸어서 춘천 김유정 역까지 걷는 피정을 하였고 이번 달에는 서울 강변 역에서부터 양수리까지 걸었습니다.

지난달은 아직 겨울이었기에 걷는 내내 아주 한가롭고 호젓하게 피정을 할 수 있었는데 이번 달은 이미 봄이었기에 봄을 느끼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제가 가는 길에 많이 나와 어떤 사람은 저처럼 걸어서, 어떤 사람은 자전거로 동행을 하였습니다. 느낀 것은 봄을 맞이하는 마음은 다 같구나! 이거였습니다. 그리고 보내는 것도 중요하고 잘 보내야 하지만 맞이하는 것을 잘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으면서 세월이 가는 것을 많이 느끼고, 더 나이 먹어 이러저러하게 되면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지 나름대로 미래 대비를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대체로 이런 생각들은 밝지 않습니다. 아프면 어떻게 하지,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남에게 신세를 져야 할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하지, 뭐 이런 것들이니 밝을 수가 없지요. 심지어 늙은이 냄새가 많이 나서 젊은 사람들이 가까이 오기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런 것이 상념처럼 있어서인지 이번 피정 길 떠날 때도 지금 길을 가고, 세월도 간다는 생각을 한동안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혼자고 다른 사람들은 같이 길을 가기 때문인지 모두 밝고 생기가 있는데 저만 너무 가라앉아 있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봄옷을 입고 있는데 저만 겨울 외투를 입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다)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러함을 생각하며 생각을 추슬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오는 거야! 하고 생각을 바꾸려고 했고 그래서 봄을 적극적으로 맞이하겠다는 표시로 이미 파릇한 싹을 새 혓바닥만큼 내보이기 시작한 길가 나무들을 일부러 둘러보고, 길가의 낙엽을 헤집어 싹이 올라오는지 보려고도 했습니다.

과연 낙엽을 들추니 그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온통 고개를 내미는 거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새싹들은 겨우내 이 낙엽을 이불 삼아 덮고 있었던 겁니다. 옛것의 퇴장과 새로운 것의 등장! 순간, 감동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파릇파릇 새로운 싹을 내민 것도 감동이지만 겨우내 이불이 되어준 늙고, 낡고, 삭은 이파리들도 감동이었습니다. 이것들도 한 때는 새싹이었고, 푸르른 생명이었던 때가 있었으니 하늘로부터 부지런히 태양과 바람을 날라주고, 때가 되었을 때는 기꺼이 땅으로 떨어져 이불이 되어준 것들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때보다 먼저 저무는 때가 있었고, 썩는 때가 있었으니 우리는 이 저무는 때와 썩는 때를 무시하지 말 것이며 저묾과 썩음이 사랑 아니라고 우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새싹의 돋음이 사랑을 먹고 태어남이라면 저묾과 썩음은 사랑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싹은 사랑이 되어준 잎새의 사랑을 먹고 태어난 것입니다. 가야 오는 것이고, 간 것이 온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는. 그러니 또 말해야겠습니다. 세월이 가는 게 아니라 봄이 오는 거야!!!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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