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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고용평등법 위반? 떨고있는 인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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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고용평등법 위반? 떨고있는 인사팀

입력
2018.03.27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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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에선 남성에 점수 더 줘

인사담당자 최초로 구속 수사

직무상 예외인정 조항 있지만

관례적 행위도 문제될까 우려

“기준 수정 등 대책 세워야하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외국계 자동차회사 인사팀 정모(30)씨는 며칠 전 신문에서 본 뉴스가 영 찜찜하다. 검찰이 기업 채용비리를 수사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한 은행 인사담당자가 채용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남성 지원자들 점수를 올려준 혐의로 ‘구속까지 됐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는 것. 그는 “우리 회사도 남성이 7명이면 여성은 3명 정도밖에 합격을 못하는데 혹시나 이런 것들도 나중에 문제 생기는 것 아니냐”라며 “채용 기준 수정 등 대책을 세워야 하냐”고 걱정했다.

채용비리 혐의로 한창 검찰 수사를 받는 KB국민은행에 기업 인사담당자들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비리가 진짜 있었는지, 누가 비리에 연루됐는지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대신 은행 직원 상당수가 여성인 걸 감안해 남성을 좀더 뽑겠다고 시도한 과잉 배려(점수 조작)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검찰 판단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은 업계에서 매우 생소한 말이다. 이번 KB국민은행 수사가 시작되면서 알려졌다고 해도 무방한데, 이 혐의로 구속이나 기소가 되는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 처벌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분명 현행 남녀고용평등법 7조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다만 기업들은 그간 비비고 기댈 언덕을 해당 법이 품고 있었다고 항변한다.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성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경우’는 예외로 인정한다는 2조1항이 그것이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논리로 기업들은 남녀고용평등법을 피해왔다. 법조계 관계자는 “관련 판례도 사실상 없어 판결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사기업이 자율성을 내세우면 더욱 처벌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검찰 결정이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격이라고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말한다. 이미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특정 성별을 선호해왔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실시한 238개 기업 대상 설문 결과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전체 63.4%(151개 기업)가 채용 시 지원자 성별을 고려한다고 응답했고, 채용 시 선호하는 성별로 ‘남성’을 꼽은 기업은 전체의 74.2%에 달했다.

결국 드러내놓고 점수를 덤으로 얹어주는 등 인위적인 조작은 하지 않았더라도 각종 채용 조건에 남녀 차이를 두거나, 같은 점수일 경우 남성을 우선 뽑는 등의 관례적 행위가 앞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걱정한다.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지원 자격을 남성은 32세, 여성은 30세까지로 한정하는 등 여성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차별하는 회사도 있다”고 귀띔했다. 채용 과정에서 성별 차별의 피해는 대부분 여성이지만, 일부 업종에선 남성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느 한쪽 성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기우라는 의견도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처럼 점수 조작 등 적극적인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 한 지금처럼 이 조항만으로 처벌이 될 리 없다는 것이다. 류호경 류노무사 사무소 대표노무사는 “고용노동부 관리감독 강화 등의 조치가 우선돼야 하겠지만, 이번 수사를 통해 기업들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인식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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