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조절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조절할 수 있는 것을 가려내는 힘이 분별력이고 그것에 발휘하는 능력이 용기다.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들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고 만용을 부리거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고유한 임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환경을 탓하거나 자신의 하찮은 일들을 합리화하여 설명한다.

‘창조’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발견하고 그것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어 몰입하는 행위다. 그런 사람의 유일한 경쟁자는 자신이다. 창조적인 인간은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고유한 한 가지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피타고라스, 단테, 루터, 베토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인간들은 자신을 감동시킬만한 일생의 과업,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거침없이 세상이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반짝이는 마음의 별이 저 하늘의 별들보다 아름답다고 확신하였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별이었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뿐이다. 생각은 내 말과 행동을 유발시키는 단초다. ‘생각’은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나의 욕망을 부추기는 ‘잡념’이다. 잡념은 어제까지 늘 하던 진부한 생각의 연속이다. 잡념은 구태의연한 말과 행동으로 자연히 드러내 그 사람을 진부하게 만든다. ‘생각’이란 내가 지금 여기에서 떠올리는 생각을 가만히 관찰하는 기술이다. 그 생각을 깊이 관찰하면, ‘나만의 남다른 생각’이 등장한다. ‘나만의 남다른 생각’은 나를 고유한 존재로 만든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기술했다는 ‘잠언’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사람은 자신 스스로 생각하는 그만큼의 존재다.”(‘잠언’ 23.7) 솔로몬은 ‘생각’을 히브리어 ‘샤아르(sa‘ar)’란 단어를 통해 정의하였다. ‘샤아르’는 혼돈의 장소인 버려진 땅에서 질서의 장소인 도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성문’이다. ‘샤아르’는 또한 ‘성문으로 진입하려는 나를 성문 위에서 관찰하는 행위’다. 생각이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는 자신을 내가 스스로 제3자가 되어 가만히 지켜보는 행위다. 나의 생각들을 가만히 복기해 보면, 내가 늘 습관적으로 하던 생각들이다.

며칠 전 책에서 발견한 한 문구가 습관의 중요성을 나에게 깨우쳤다. 기원전 6세기 소아시아(오늘날 터키) 에베소라는 도시에 거주하던 철학자인 헤라클리투스가 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에쏘스 안쓰로포 다이몬(ethos anthropo daimon).” 이 그리스어 문장은 “습관은 인간에게 운명이다”라는 뜻이다. ‘에토스(ethos)’는 ‘습관’이나 ‘개성’, ‘성격’, 나아가 ‘(비극의) 등장인물, 배우’를 뜻한다. ‘개성’이란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이 굳어져,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 배우란 자신의 개성을 일관되게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사람이다. 헤라클리투스의 문장은 “개성은 인간에게 운명이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에토스’는 서양문명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고대 그리스 비극의 핵심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을 분석한 ‘시학’이란 책에서 비극에서 ‘뮈토스(mythos)’와 ‘에토스)’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았다. ‘뮈토스’란 이야기 전체를 하나로 묶어 관객들에게 ‘공포’와 ‘연민’이라는 감동을 주는 ‘줄거리’다. 줄거리는 비극작품의 성공을 결정한다. 비극의 줄거리는 배우들의 표정, 몸짓, 말, 침묵으로 표현된다. ‘에토스’는 바로 ‘배우’다. 훌륭한 배우는 자신이 맡는 극중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개성을 단호하고, 간결하게 압도적으로 연기한다. 만일 장군의 역할을 맡았다면, ‘군인’다운 기품으로 단호하게 말하고 용감하게 행동할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흉내 낸다면, 그는 실패한 배우가 되고, 그 연극도 실패작으로 전락한다.

‘에토스’는 배우이자 배우가 상징하는 개성이다. ‘에토스’는 그 줄거리를 완성한다. 배우는 자신이 맡는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자신의 개성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자다. 맡은 역할이 ‘군인’인데도 ‘군인’이기를 포기하고 ‘상인’ 흉내를 낸다면, 나는 실패한 배우가 되고 만다. ‘에토스’는 결굴 내 반복적 생각의 습관이 만들어낸 개성이며, 그 개성을 드러내는 배우다.

헤라클리투스는 ‘습관’ 혹은 ‘습관이 만들어 주는 개성’이 인간에게 운명이라고 단언한다. ‘운명’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다이몬(daimon)’은 원래 ‘우주의 질서에 맞게 한 개인에게만 부여된 어떤 것’이란 의미다. ‘운명’이란 나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과업이다.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개성이다. 나의 개성은 나의 습관이며, 습관은 나의 반복된 생각이 만든 일관된 행동들이다. 생각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다시 환경이 되어 운명이 된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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