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제주' 강원도, 느린 삶의 유혹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집값과 육아비용, 하루에도 몇 시간씩 짐짝처럼 실려 다녀야 하는 만원 버스와 지하철…. 인구과밀의 거대 도시 서울은 육중한 중력으로 청춘의 삶을 짓눌러왔다. ‘포스트 제주’의 대안으로 동해의 연안도시들이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서울을 떠나 강릉에 정착한 황주성(왼쪽), 김은현씨 부부가 강릉 강문해변에서 날아오를 듯 점프하고 있다. 강릉=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직장생활 7년차이던 황주성(34)씨는 2015년 3월 결혼하면서 서울 이태원 부근에 작은 전셋집을 구했다. 집주인은 앞서 살던 사람의 남은 계약기간 1년만 일단 살고, 별 문제가 없으면 같은 조건으로 계속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재계약 시기가 되니 얘기가 달라졌다. 월세로 바꾸겠다는 집주인에게 사정사정해 반전세로 돌린 게 지난해 3월. “결혼할 때도 서울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얼마나 어렵게 그 집을 구했는지 몰라요. 서울서 산다면 집을 사지 않는 한 이 상황이 되풀이 되겠구나 싶으면서 진이 확 빠지더라고요.”

강릉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결혼 후 첫 휴가지였던 강릉은 제주처럼 멀지도 않으면서 제주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목가적 삶을 누리면서도 도시문명의 편리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명료해질수록 강릉이 점차 센 힘으로 자신을 끌어당겼다. 평생을 이어온 서울살이에 대한 회의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아등바등 궁핍하게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하나.’ 물론 직장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직장은 영구히 나의 직장일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려웠다. 더 근본적인 물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기서 아이를 낳아 잘 키우는 게 가능한가, 부대끼며 버텨가는 이 척박한 삶이 과연 지속 가능한 삶일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해 직장을 그만둔 황씨는 2016년 8월 강릉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제주 말고 강릉ㆍ속초… 해안도시가 뜬다

제주로의 이주 열풍이 분 지 5년이 넘었다. 자본주의적 삶의 속도와 경쟁에 치여 새로운 삶의 대안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대거 제주로 몰렸다. 죽어라 뛰어봤자 제자리인 콘베이어벨트 위 삶에서 벗어나, 느리지만 여유롭게 살겠다며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이 2012년 이래 총 6만명에 달한다. 맹렬하던 제주행 이주 행렬은 그러나 지난해부터 기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2016년 1분기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순유입 인구는 지난해 1월 625명으로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입인구 폭증에 따른 정주환경 악화와 부동산 가격 폭등이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2016년 연간 이주 인원 2만명을 돌파하면서 제주는 대안적 삶의 장소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강릉과 속초를 중심으로 한 강원도의 해안도시들이 제주의 뒤를 이어 느리게 살기의 최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동해 바다와 설악산을 끼고 있는 속초, 경포대와 남대천, 가시연경포 습지까지 품고 있는 강릉은 제주 부럽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교통망 발달에 따라 웬만한 수도권 도시만큼 서울에서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엔 원주-강릉간 복선전철(KTX)이 개통돼 5시간 47분이 걸리던 서울-강릉 소요시간이 1시간 12분으로 줄었다. 바야흐로 강릉도 서울의 일일생활권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2024년 개통 예정인 동서고속화철도가 달리기 시작하면 서울에서 속초까지도 1시간 15분 만에 주파하게 된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사회기반시설이 대거 확충된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주거비용이 싸다. 자연친화적 도시생활의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할 때, 눈 밝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곳이 바로 강원도의 해안도시들인 것이다.

강릉과 속초 같은 강원도 해안도시들은 산과 바다를 모두 끼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제주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강릉 강문해변의 모습. 강릉=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서울이 싫어서, 살기 너무 힘들어서

한국 첫 야생 영장류학자인 김산하(40)씨는 2014년 10월 결혼하면서 신접살림을 강릉에 차렸다. 연고는 없었다. 서울 살던 아내의 친구가 강릉 출신 남편과 함께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 정도가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그는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야생 긴팔원숭이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크랜필드대 디자인센터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삶의 이력으로 보자면 오히려 코스모폴리탄에 가깝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원이자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으로, 생태 저술가로 일하면서 활동의 반경 역시 대개 서울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었다.

“서울은 도저히 못 살겠고, 지나치게 멀지 않으면서도 서울이나 경기권과는 질적으로 다른 곳을 찾았어요. 강릉이 딱이더라고요.” 그는 “서울과 경기, 그러니까 서울식 라이프스타일로 대변되는 한국의 공간에 진절머리가 났다”고 했다. 물론 돈이 아주 많았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서울은 부자들에게만 살기 좋은 상위 10%에 최적화된 도시다. “그렇다고 꼭 돈 문제만은 아니었어요. 공간의 구조, 녹지의 빈도와 구성, 건물과 실내의 미학, 도시 전체에 찌든 국적 없는 속물성, 지구의 현 상태를 완전히 무시한 에너지 집약적 생활양식…. 서울의 단점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죠. 이 견딜 수 없는 단점들이 강릉이라는 삶의 대안을 찾게 만들었어요.”

2년 넘게 강릉에 살면서 그가 축적한 최고의 자산은 바로 여유다. 시간과 공간, 물질과 환경 모든 면에서 서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여유가 강릉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우선 공간과 밀도에서 여유가 있죠.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공간마저 어떻게든 사고팔고 활용하려는 억척스러움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해방돼 있으니까요. 또 강릉은 바다와 산과 습지 등의 자연환경이 모두 함께 있잖아요. 그 자연환경이 저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 아니라 당당하게 공존하는 느낌이에요.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남대천과 습지는 정말이지 멋진 곳이죠.”

지난해 1월부터 영국 체류 중인 김씨는 “강릉은 가게 이름도 실체 없는 외국어의 조합을 세련된 것으로 착각하는 서울의 평균 명명법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식당 ‘북새통’, 문구점 ‘또 왔네’, 청소방 ‘뽀드득’, 단골 술집 이름 ‘난파선’을 예로 들었다. 쇼핑을 하더라도 영혼 없는 서비스업과 진상손님에 둘러싸여 볼 일을 봐야 하는 서울과 달리 모르는 사람과도 짧은 대화나 인사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종을 신뢰하고 애정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각박한 서울살이에서는 도리어 번잡스럽고 기괴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환대 받는다는 나날의 느낌은 행복의 중요한 척도다. 지역문화가 완전히 죽은 서울과 달리 강릉의 정월대보름과 단오제가 여전히 지역 주민들이 즐기는 축제의 장인 이유이기도 하다.

황주성(오른쪽), 김은현씨 부부가 운영하는 강릉 경포대 인근 셀프웨딩 드레스 대여점 ‘여행자의 옷장’은 이들 부부에게 일터이자 놀이터다. 강릉=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떠나야 비로소 가능한 것들

제주든 부산이든 강릉이든 속초든, 이곳을 갈망하는 욕망의 구조는 동일하다. 아등바등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산과 바다를 대면하며 여유롭게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것. 돈을 덜 버는 대신 시간을 더 벌고, 시간을 더 쓰는 대신 돈은 덜 쓰는 삶이다. 따박따박 나오지만 언제 어디다 썼는지도 모르는 월급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다. 많이 벌어 허투루 쓰느라 피폐해진 심신이 욕망의 크기를 줄일 것을 명할 때 월급이라는 마약을 끊는 결기가 가능해진다.

이태원 전셋집이 반전세가 되면서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황주성씨와 달리 아내 김은현(35)씨는 선뜻 결심을 못했다. 친정이 강릉인데도 결심하기는 더 어려웠다. “서울생활 한 지 15년이나 지났고, 어렵게 구한 직장도 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서울서 누리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림 없는 남편을 보면서 이왕 도전할 거 한 살이라도 더 어렸을 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릉행을 결심한 두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숙제를 풀어야 했다. 황씨는 식당, 커피숍 등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는 사업을 해서는 경쟁력도 떨어지고, 오래 버틸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언론사 지원 업무를 했던 황씨와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출판 업무를 맡았던 김씨의 이력을 종합한 후 강릉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생업 아이템을 고민했다. 비싸고 틀에 박힌 스튜디오 사진 대신 스마트폰으로 개성을 살려 웨딩 촬영을 하려는 실속형 예비 신혼 부부들이 늘고 있는 트렌드에 주목했다.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는 강릉의 자연을 배경 삼아 사진 촬영을 하러 온 커플들에게 드레스와 촬영 장비 등을 대여하는 가게를 내기로 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한 관광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했다. 다행히 당선. 가게 운영을 위한 초기 자금을 지원 받게 되자 개업에 속도가 붙었다. ‘여행자의 옷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지난해 11월 오픈한 가게는 올 봄 결혼 시즌을 앞두고 온라인 홍보와 손님 맞이 준비로 한창 바쁘다.

“아침에 눈 떠서 잠들 때까지 가게 오픈 준비하랴 홈페이지 제작 같은 아르바이트 하랴 일하는 시간은 늘었어요. 하지만 맞벌이 하느라 서로 얼굴 볼 새도 없었던 아내와 붙어 지내며 대화도 많이 하고, 훨씬 여유로워졌어요.” 두 시간 이상 써가며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내일의 출근까지 잠시 집에 머무는 ‘서울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출퇴근에 빼앗기던 헛심을 온전히 일과 가정에 쏟을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다채로운 바다의 모습을 바로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부자가 된 것 같은 즐거움이 커요. 서울 살 때보다 덜 벌지만 큰 돈 벌겠다고 마음 먹은 건 아니라 괜찮아요. 덜 벌어도 동네 여기저기 다니며 예쁜 데 보이면 아내랑 실컷 구경하고, 맛있는 데 가서 좋은 음식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요. 서울에서보다 행복합니다.”

처음 강릉행을 망설였던 김씨는 서울을 떠나 얻은 게 더 많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남들처럼 틀에 박혀 살았어요. 5년 후, 10년 후의 내 모습도 막막했고요. 하지만 강릉에 와서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면서 앞날에 대해 더 큰 기대를 하게 됐어요. 서울보다 즐길 거리가 적어 아쉬웠지만, 서울 방식만이 문화를 즐기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최근 속초 영랑호 옆에 카페 '보드니아'와 가정집을 겸한 2층 건물을 지은 이상규씨가 직접 블렌딩 한 커피의 향을 맡아 보고 있다. 속초=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CGV 홍보팀장으로 일하다 4년 전 속초로 내려간 이상규(49)씨는 최근 서울 옥수동 아파트를 팔아 영랑호 옆에 2층 건물을 지었다. 1층은 아내와 함께 카페 ‘보드니아’로 운영하고, 2층은 살림집으로 쓴다. 20년 넘는 직장생활 동안 에너지 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속초를 찾았던 게 인연이 돼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긴 경우다. 최첨단 문화산업의 한복판에서 느낀 스트레스와 피로가 서울을 떠나게 만든 원인이지만, 그런 문화적 촉이 있었기에 다른 곳이 아닌 속초를 열망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저나 아내나 커피를 워낙 좋아했거든요. 큰 돈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속초 와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생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만 카페를 유지해요. 전보다 소득이 줄었지만 여기서는 덜 쓰게 되죠. 후회는 한 톨도 없어요. 동해바다와 영랑호와 설악산까지 날마다 보고 살면서 이제야 내게 딱 맞는 안식처를 찾은 것 같거든요.”

올 초부터 속초에서 북스테이 카페 '완벽한 날들'을 운영 중인 최윤복(왼쪽부터), 하지민씨 부부와 후배 이담인씨. "속초는 아기 키우기 정말 좋은 곳"이라며 환한 웃음으로 자랑을 이어갔다. 속초=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아이를 위한 지속 가능한 행복

지난해 1월 속초에 ‘완벽한 날들’이라는 북스테이 카페(서점+게스트하우스+카페)를 연 최윤복(34), 하지민(30)씨 부부는 비영리기구(NGO) 활동가로 일하다 2014년 9월 속초로 이주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최씨의 형이 속초에 카약ㆍ카누 제작업체를 창업하는 데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던 게 계기였다. 일단 형과 함께 일해 본 후 서울로 돌아올지 속초에 남을지를 결정하자고 마음 먹고 서울을 떠났다. 하지만 지난해 부부는 결국 속초 정착을 결정했다. 두 돌 된 아이 때문이었다.

“갑갑한 서울보다는 안전하고 자연환경 좋은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요. 미세먼지와 황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초에 남을 이유는 충분하거든요.” 하씨는 “집 월세에 교통비에 아이 베이비시터 비용까지 생각하면 둘이 벌어도 빠듯하다”며 “서울로 되돌아갈 엄두가 안 나기도 했다”고 했다.

세계에서 행복도가 가장 높은 북유럽의 도시들은 대부분 도보나 자전거로 출퇴근 할 수 있는 작은 도시들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 자체가 서울과 같은 초거대 과밀도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오후 5시에 칼퇴근해도 집에 가면 7시다. 보육비와 교육비만 천문학적인 게 아니다. 놀이에도 끝없이 비용이 소요된다. 모래놀이를 하려면 2만~3만원을 내고 모래놀이장에 가야 하고, 물놀이를 하려면 역시 비슷한 돈을 내고 워터파크에 가야 한다. 모든 게 돈이고, 가봐야 사람에 치이다 온다. “돈 안 내고 매일 보는 설악산과 호수 경치가 너무 아름답고요. 바다가 가까우니 아이 데리고 놀러 다니기도 너무 좋아요. 이런 곳에서 아이 키울 수 있다는 게 너무 큰 행복이에요.”

속초에서 '느리게 살기'를 만끽 중인 이담인(왼쪽부터), 최윤복, 하지민씨가 올 초 오픈한 북스테이 카페 '완벽한 나날들' 앞에 섰다. 속초=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제목을 딴 세련되고 트렌디한 이들 부부의 북스테이 카페는 속초로 이주해오는 도시 인구가 늘어나고 있기에 가능한 업종이다. 국회의원실 비서로 일하던 부부의 친한 후배 이담인(29)씨까지 서점 일을 돕기 위해 작년 말 서울에서 속초로 내려왔다. 잠깐의 리프레시를 위해 내려왔지만 속초 생활에 홀딱 빠져 영구 정착을 결심했다고. “문화생활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건 가끔씩 서울 가서 해결하면 되니까요. 어차피 매일 가지도 않는 극장과 공연장, 백화점 때문에 여기서 매일 누리는 상쾌한 공기와 아름다운 바다를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분기별로 한 달씩만 한국에 머물 정도로 해외 근무가 잦은 남편과 함께 서울에 살다 강릉으로 이주한 박미혜(36)씨는 5세와 2세 두 아이를 위해 낙향을 결심했다. 내는 세금에 비해 돌려받는 혜택도 없는 서울에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큰 아이가 40개월이 될 때까지 입소 우선순위에서 밀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못 보냈어요. 지난해 강릉에 내려와 처음 공립유치원에 보내게 됐죠. 아산병원이라는 종합병원도 있고, 서울까지 거리도 가깝고, 초등학교에서는 승마, 골프 같은 방과후교육까지 공짜로 해주니 아이 키우기에 강릉보다 좋은 데는 없을 걸요.” 한국에 오면 서울까지 출퇴근 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은 “오히려 캠핑 오는 기분”이라며 “KTX가 뚫리면 장거리 출퇴근을 할 테니 계속 강릉에 살자고 말할 정도”다. “여기 오래 사신 분들은 중학교 이후 교육이 취약하다며 서울 가실 생각을 하시던데 저는 이제 대학 학벌로 먹고 사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으로 뭐든 배울 수 있고 남는 건 창의성과 인성일 것 같은데 그런 걸 키우기엔 서울보단 강릉이 훨씬 낫죠. 부모들이 제주를 찾는 것과 같은 이유죠.”

박씨는 “일상을 보내다가 어스름 내려앉는 저녁이면 차를 끌고 나가 바닷가에서 산책하는 시간”을 강릉에서의 가장 좋은 시간으로 꼽았다. “다리가 아프면 아이들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 마시고, 매일을 그렇게 사는 거죠. 숲놀이 흙놀이 맘껏 하고, 도롱뇽 청개구리 반딧불이 실컷 구경하면서요.”

강원 고성 아야진에서 '인생 2막'을 연 박재식(오른쪽)ㆍ이경은씨 부부가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닷가 생활의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다. 고성=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졸혼 대신 속초살이… 노년의 행복을 위하여

18년간 분당에 살았던 박재식(65)ㆍ이경은(63)씨 부부는 지난해 가을 고성군 아야진의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재작년 남편과 차를 몰고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우연히 들른 이곳 풍경이 너무 좋아 잊혀지지가 않았다”는 이씨는 분당으로 돌아와 수시로 아파트 매물을 검색했다. “여기서 살아야겠다”는 가슴의 명령에 따라서였다. 하지만 부부는 생각이 달랐다. 남편 은퇴 후 바닷가에 가 살겠다는 이씨의 오랜 동경은 귀촌해 농사를 짓겠다는 남편의 소망과 부딪치며 줄곧 이해관계 상충을 유발했다. 졸혼까지 고려할 정도였다. 매물이 나오자마자 덜컥 아파트를 계약한 아내는 “1년 정도만 주말용 세컨드하우스로 사용하자”고 남편을 설득해 바닷가 집을 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편이 저보다 더 이곳 생활을 좋아해요. 분당 살 때는 친구들 만나 점심 먹으면서 두세 시간씩 얘기를 나누고 다시 헤어지고 하는 일이 늘 반복됐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삶에서 좀 벗어났으면 싶더라고요. 여기서는 조용히 저만의 삶을 꾸릴 수 있어서 좋아요.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 빌려다 차 마시면서 읽고, 문화센터 가서 요가도 배우고요. 요가 강좌에 가면 서울서 온 분들이 70~80%쯤 돼요.”

남편 박씨는 “예전에는 몰랐던 소소한 재미들이 있어 좋다”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방에 담아 아내와 일출 보러 나가는 산책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졸혼은 언제 그런 얘기를 나눴냐는 듯 부부의 대화에서 종적을 감췄다.

바다는 이제 주거지 선택의 중요 요소가 되고 있다. 베란다에서 매일 바다를 내다보며 살아가는 이경은(왼쪽), 박재식씨 부부. 고성=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을 떠나 동해로 간 사람들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순간의 화려를 위해 매일의 일상을 참고 견디는 것은 의미 없다고. 소중한 것은 나날의 삶이라고. 인간은 어디서 태어날지, 어디서 죽을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디서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서울에서 밀려난 삶은 실패라는 한국사회의 거대한 편견에 마침내 균열이 가고 있다. 자발적으로 서울을 버리고 떠난다. 중요한 건 제주냐 강릉이냐가 아니다. ‘거주지의 자기결정권’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 한국인들이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점이다.

강릉ㆍ고성ㆍ속초=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행복은 욕망의 크기를 분모로, 소유의 크기를 분자로 삼는다. 분자를 더 이상 늘릴 수 없다면 분모를 줄이는 것이 행복방정식이다. 속초 영랑호 옆에서 카페 '보드니아'를 운영 중인 전 CGV 홍보팀장 이상규씨. 속초=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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