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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법 시행 1년… 최소한의 복지도 없는 사육장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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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법 시행 1년… 최소한의 복지도 없는 사육장 여전

입력
2018.03.24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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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동물원ㆍ체험 동물원

추위ㆍ더위 피할 공간 없이

철창에 동물 그대로 방치 허다

사이테스 등록 90종만 면적기준

그 외 동물 기준없어 환경 열악

"관리지침 대상 동물 확대해야"

경기 가평군의 한 동물원 철창 속 일본 원숭이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앉아 있다.
경기 가평군의 한 동물원 철창 속 일본 원숭이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앉아 있다.

21일 오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경기 가평군의 한 동물원. 이곳에서 1㎞ 떨어진 수목원이 2016년 11월 ‘동물을 만지고 교감할 수 있다’는 콘셉트로 문을 연 곳이다. 3,000원을 내고 받은 당근과 건빵, 개 간식이 든 바구니를 들고 동물원에 들어서자 개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동물은 철창 속 차우차우종 개 두 마리였다. 철창 안에는 나무로 된 그늘막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추위나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아프간 하운드종 개들이 사람들이 지나가자 철창 앞으로 나와 나란히 서 있다. 개들은 추위나 더위를 피할 곳 없이 야외에서만 지내야 한다.
아프간 하운드종 개들이 사람들이 지나가자 철창 앞으로 나와 나란히 서 있다. 개들은 추위나 더위를 피할 곳 없이 야외에서만 지내야 한다.

이곳은 2만6,000㎡ 규모에 미어캣, 반달가슴곰 등 1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이중 개가 22종 47마리에 달한다. 50여종의 조류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게 바로 개였다. 티베탄 마스티프, 아프간 하운드, 버니즈 마운틴도그 등의 대형견들은 종별로 많게는 6마리가 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다. 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곳을 계속 왔다갔다 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거나, 같이 있는 개에게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은 채 임신한 개도 있었다. 개들을 교배해 낳은 강아지들은 추운 날씨였지만 어떤 보온장비도 없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강아지들만 따로 모아 놓은 강아지 유치원에 강아지들이 모여 있다. 이곳은 때에 따라 체험을 위해 개방된다.
강아지들만 따로 모아 놓은 강아지 유치원에 강아지들이 모여 있다. 이곳은 때에 따라 체험을 위해 개방된다.

동물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나귀, 말, 염소 등 가축을 제외한 야생동물은 호랑이, 반달가슴곰, 원숭이, 사막여우, 미어캣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벵골호랑이는 콘크리트로 된 내실과 사육장에 한 마리씩 무료하게 누워있었고, 일본 원숭이들은 관람객으로부터 몸을 숨길 곳 없는 사육장에서 장난감 하나 없이 사육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동물원 관계자는 “개들의 수가 불어나는 게 문제인 건 알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지인들에게 입양을 보냈는데 관리가 어려워 중성화 수술을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들의 경우 산책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야생동물 역시 행동 풍부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경기 양주에 위치한 한 실내 체험 동물원은 조류, 파충류, 포유류 등 50여종의 동물 대부분을 만질 수 있었다. 완전히 체험만을 위한 시설이다. 하지만 사육사도, 관람객들도 처음에만 손을 씻은 이후 프레리도그부터 앵무새, 거북이, 토끼, 뱀까지 수십 종의 동물을 그대로 만지고 있었다. 이는 동물간 질병 전파의 위험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조류사의 경우에는 공짜로 주는 작은 모이 봉투를 보자마자 새들이 마구 몰려 들었고, 새들은 또 바닥에 떨어진 모이를 먹기 위해 바닥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관람객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갑자기 놀라게 되면 새들을 그대로 밟을 위험이 높았다. 실제 조류사 앞에는 새들이 밟히는 경우가 많다며 주의를 요구하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더욱이 매 시간 체험 설명회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찾는 주말에는 동물들이 하루 종일 사육장에서 나와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사막여우들이 구석에 웅크려 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사막여우들과 관람객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막여우들이 구석에 웅크려 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사막여우들과 관람객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 동물원의 경우 자체적으로 동물의 사육환경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소규모 동물원이나 체험 동물원은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이렇게 사각지대에 있는 동물원에 적용되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ㆍ수족관법)'이 지난해 5월 시행된 지 1년이 되어가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동물원 동물들의 환경은 법 시행 전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법에 따르면 동물원과 수족관은 최소한의 시설과 인력기준을 갖추고, 이에 대한 현황과 관리계획을 관할 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갖춰야 할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ㆍ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사이테스ㆍCITES)에 등록된 90종에 대해서는 사육기준이 있으나 면적에 대한 것뿐이고, 나머지 동물에 대해서는 면적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이테스 등록종 중에서도 사막여우 등 갯과동물은 지켜야 할 면적 기준이 없다. 그러다 보니 소규모 동물원들은 사이테스에 해당하는 동물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기준을 적용하고 나머지 야생동물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사육 환경을 갖추지 않은 채 운영하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단조로운 사육장에 동물이 갇혀 있고 관람객이 철창 너머로 동물의 외적인 생김새만 구경하는 동물원 형태는 전근대적인 전시형태로, 외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다”며 “이 동물원이 각종 개들을 열악한 환경에 전시하는 것도, 동물원에서 전시할 수 있는 동물의 종류나 사육 환경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양주에 있는 한 체험동물원에 있는 프레리 도그가 철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곳은 50여종의 동물을 대부분 만질 수 있다.
경기 양주에 있는 한 체험동물원에 있는 프레리 도그가 철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곳은 50여종의 동물을 대부분 만질 수 있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부 산하에 동물원ㆍ수족관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동물 종별 관리지침을 정해 동물원에 제공하는 내용을 담은 동물원ㆍ수족관법 개정안을 발의,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리지침 대상 동물의 종을 사이테스에 한정하지 말고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육사가 친칠라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사육사가 친칠라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환경부도 사이테스 종을 포함해 동물원 동물들에 대한 적절한 사육 환경이나 관리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주목하고 동물원법 개정에 대해 서울대에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특히 환경부가 음식을 파는 곳이나 동물원으로 등록하기 위한 개체 수(10종 또는 50개체)를 확보하지 못한 곳은 야생동물을 아예 전시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 중(본보 1월 30일자 15면)인 게 알려지자 오히려 서둘러 등록을 하겠다고 나서는 동물원들이 늘면서 더욱 엄격한 사육, 관리 기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동물원ㆍ수족관을 아예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로 바꾸고, 포유류의 경우 실내뿐 아니라 야외 방사장을 반드시 갖추도록 하는 등의 기준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주 대표는 “동물원ㆍ수족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돼 가지만 정작 동물원 동물의 처지는 전혀 나아진 게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동물 복지뿐 아니라 관람객이 동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얻고 야생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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