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현실 혼동해 시장과 괴리된 정책
큰 것을 이루고 싶으면 작게 생각해야
지금 필요한 것은 오기가 아니라 용기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정부는 심야영업 금지 조치를 내렸다. 단속이 시작되면서 사회부 경찰 출입기자들은 위반 사례를 찾느라 밤새 유흥가를 돌았다. 서울 청진동 해장국 집들은 자정이 가까워 오자 불빛이 새나가지 못하도록 두꺼운 커튼으로 유리창과 입구를 가린 뒤 손님을 받았다. 경찰이나 서울시 위생과 직원도 이런 편법을 눈치를 챘으나 대부분 눈감아 줬다. 그래도 몇 년간은 지속적으로 단속 시늉을 했지만 나중에는 유야무야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들어서자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심야영업 금지 조치는 전면 해제됐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심야영업이 사라질 것 같다. 2차 삼아 들른 치킨집 주인은 밤 11시 반에 가게 문을 닫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장사도 시원치 않은데다 직원 일당 주면 몸만 축나고 남는 것도 없단다. ‘24시간’이 간판인 일부 편의점도 심야영업은 중단하는 추세다. 한때 불야성을 이루던 서울 광화문과 시청일대 거리의 밤길엔 어둠이 깊고 넓게 내렸다. 주머니도 넉넉하지 못하니, 음주를 삼가고 일찍 귀가하는 저녁 문화는 반길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의도하지 않은 정책의 결과라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인 것들이 많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그렇다. 하지만 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목을 조르는 부작용이 드러나 땜질 처방을 해 보지만 뜻대로 안 된다.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에 숙제를 던지는 듯하다. 가이드라인만 내놓고 시장 참여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최저 임금 대폭 인상의 여파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부터다. 또 중소기업 임금을 지원한다고 청년들이 일제히 박수칠까. 말이 중소기업이지 실제로 사람이 많이 필요한 곳은 음식점과 주점, 소형마트와 화물차 운전 같은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왜 일자리가 늘어날까. 근로자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게 시간일까 돈일까. 근로시간 줄이면 일자리가 나눠질까. 차라리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게 나은 건 아닐까.

아무래도 정부가 당위와 현실을 혼동하는 것 같다. ‘큰 것을 이루려면 작게 생각하라’는 ‘Think small’ 접근법이 현명할 수 있다. 정부는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시장충격이 예상된다면 당연히 시뮬레이션을 통해 부작용을 걸러내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런데 종종 이런 과정이 생략된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아니면 정부 내에서 끼리끼리 ‘집단마취 현상’이 존재하거나,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 역할이 없는 것도 같다. 정부 정책이 현실과 괴리되면서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남의 돈 쓰듯 각종 정책에 돈을 쏟아 붓는다. 그렇게라도 문제가 해소된다면 응당 반길 일이다. 하지만 응급처치용 진통제처럼 현금을 뿌리는 식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정부가 일단 정책 시행에 돌입하면 후퇴하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아우성이지만, 정부가 체면을 구길 수 없어 현실을 외면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오기가 발동하면 민생이 더욱 힘들어진다.

아무래도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줄줄이 꼬인다. ‘일단 시행이라도 해 보자’는 방식은 무리다. 지금 우왕좌왕하는 경제 현장의 모습이 그 후유증이다. 더욱이 근로시간 단축의 파급효과는 최저임금 인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폭발력이 있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정권 내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방향을 전환하고 보완을 주장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러나는 것이 공격하는 것보다 열 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물러나겠다는 결단은 리더만 내릴 수 있습니다. 리더가 진흙을 뒤집어쓰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 스기모토 다카시의 저서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에 나오는 충고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조재우/2018-03-2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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