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ㆍ러 강권지배와 트럼피즘의 충돌
미ㆍ중 무역전쟁 발발로 서막 올라
中이 北 ‘뒷문’ 열면 모든 게 물거품

봄 오는 길목이 어수선하다. 춘분이 꽃샘 추위와 만설(晩雪)로 어지러웠다. 쉬이 오는 게 어디 있으랴 하다가도, 올봄만은 불현듯 왔다 갔으면 싶다. 꽃 소식을 늦출 추위야 더는 없겠지만, 피어나는 꽃송이를 위협할 얄궂은 돌개바람에 신경이 쓰여서다.

올봄은 여느 때와 다르다. 4월 말의 남북, 5월의 북미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예고된 이후 한반도 정세에 더께가 진 얼음장마저 녹아 내리리란 기대가 피어 올랐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남북미 정상회담’을 거론할 정도로 지금까지는 만사가 순조롭다.

그런데 역시 호사다마(好事多魔)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에 적잖은 암초가 도사리고 있으리란 불안은 애초부터 있었다. 최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움직임에서, 그 막연한 불안이 실체화하는 조짐을 엿보는 마음이 무겁다.

첫째가 중국과 러시아의 철권통치 강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각각 ‘황제’와 ‘차르’의 지위에 올랐다. 둘 다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양국의 국제정치 위상과 역할이 엄청난 데다 공히 ‘국가의 영광’을 내세워 온 때문이다. 역사는 정치지배력이 확고한 강대국의 강한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외향성을 발현, 대외 마찰과 충돌을 불렀음을 일러 준다. 당장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이 지향하는 비핵화ㆍ평화정착 구도의 근간인 ‘미국의 주도권’을 시 주석이나 푸틴 대통령이 그대로 두고 보기 어렵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소극적 행동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밥상을 엎으려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둘째는 미중 ‘무역전쟁’이다. 실은 가장 큰 걱정거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2일 새벽 중국산 수입상품에 관세폭탄을 퍼붓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연간 300억~600억달러에 이를 관세폭탄을 지금 당장 투하하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으름장을 놓아 온 대중 무역전쟁의 선전포고임에는 분명하다. 트럼프로서는 공약 이행이자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필요성에도 부합한다. 앞으로 미중 양국이 절충점을 찾지 못한다면, 미국의 ‘선제 공격’과 중국의 ‘보복 공격’으로 세계시장 전체가 난장판이 된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그것만도 문제지만, 미중 무역전쟁의 본격화가 북한 핵ㆍ미사일 문제에 미칠 영향이 더욱 큰 문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으로 마련된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이 껍데기만 남거나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 있다.

김정은의 신년사가 물꼬를 튼 남북대화가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과정이 워낙 빠르고 극적이어서 벌써 많이들 잊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대화 국면은 기반이 약하다. 문 대통령의 대화 및 중재 의지가 빛을 발했다지만, 그것도 김정은과 트럼프의 ‘돌출 결단’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특히 출발점인 김정은의 결단은 체제의 오랜 숙원마저 버릴 수 있다는, 생사를 건 도박에 가깝다. 국제적 제재ㆍ압박이 북 체제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현실인식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또 그런 현실인식은 국제제재의 큰 구멍이었던 ‘뒷문’, 즉 대중 국경무역을 틀어막은 중국의 역할을 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중국의 그런 역할이 미국의 무역제재 압박을 피하려는, 합리적 이익 계산의 결과라는 데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는 수시로 칼집째 칼을 들어 보이며 중국을 압박했고, 시진핑은 그때마다 주판알을 튕겼다. 지금까지는 대북 제재 동참의 이익이 컸다. 그러나 트럼프가 칼을 들어 내리쳐도 그럴까. 불가능하다. 무역전쟁도 전쟁이다. 전쟁은 합리적 계산보다 본능적 응전을 요구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의 약점을 노리고, 잠시 잊었던 동맹의 가치에 새롭게 눈뜨게 된다. 북중 교역의 ‘뒷문’이 열리는 순간, 남북ㆍ북미 대화는 물거품이 된다.

미중 무역전쟁이 불붙지 않기를, 불붙더라도 4ㆍ5월 정상회담이 북의 발목을 확실히 잡아 묶은 뒤에 그러기를 빌게 된 이유다. 그러니 봄아, 어서 왔다 후딱 가라!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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