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교육부가 공개한 새 교과서. 주입, 암기 대신 참여, 토론쪽으로 교과서는 바뀌어 가고 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이런 교과서를 불안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연합뉴스

‘역사교과서 좌편향 논란’은 참 재미없는 얘기다. 일본에 이어 러시아 기법도 추가됐다. ‘새역모(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같은 일본 극우는 알겠는데 러시아라니? 궁금하면 2014년 11월 뉴욕타임스가 러시아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심층 취재 보도한 ‘푸틴의 길(Putin’s Way)’ 기사를 읽어보길 권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와 너무 비슷한 줄거리라 읽는 내내 헛웃음이 빵빵 터질 것이라 보증한다.

좌편향 논란에 대한 학계 평가는 “역사 논쟁에서 밀리니까 그 대신 교과서, 박물관, 미술관 등을 물고 늘어지는 정치적 이미지 전쟁일 뿐”이라는 쪽이다. “정치적 이미지 전쟁”이란 ‘너 빨갱이지?’ ‘에이 너 빨갱이 맞잖아!’ ‘이래도 너 빨갱이 아냐?’라는 삿대질의 무한반복을 뜻한다. 사실 여부는 상관없다. 폭주하는 삿대질 속에 쟁점은 사라지고 의심만 남는다. 분탕질은 그거면 충분하다.

좌편향 논란은 상식선에서 묻고 답하면 된다. 좌편향 교과서 때문에 아이들이 좌편향됐다? 그러면 1980년대 주사파는 1970년대 박정희의 국정 교과서로 공부했기 때문인가. 박정희가 한 때 빨갱이였다더니, 한번 빨갱이는 역시나 어쩔 수 없는 건가. 거꾸로 최근 몇 년간은 젊은 층의 보수화 경향이 화제였다. 이들은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시절 ‘좌편향’ 교과서로 공부했다. 좌편향을 더 부채질해야 우익이 무럭무럭 자라나지 않을까.

교과서, 중요하다. 잘 만들수록 좋다. 하지만 잘 만든다는 문제와 역사 교과서에 담긴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한 사람의 세계관을 결정짓는다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 단어, 한 문장의 파괴력이 그렇게 엄청나다면 초등학교 6년 동안 ‘논어’를 달달 욀 정도로 읽혀서 우리나라를 ‘슈퍼 초울트라 성인군자의 나라’로 만들 생각은 왜 안 하는지 모를 일이다.

좌편향 논란이 실제 힘을 발휘하는 건 ‘이념’ 때문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묘한 불안감을 건드려서다. 독서량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이 유관순이 누군지, 3ㆍ1운동이 뭔지 잘 모르더라는 불안감 말이다. 기성세대의 불안감은 전 세계적이다. 2010년 미국 텍사스 주에서도 ‘백인’ ‘기독교’ 정체성이 약화된 역사 수업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이 논란을 지켜보던 당시 전미역사학회장 제임스 그로스만은 논란의 배경을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배웠던, 이름과 날짜와 사실들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바로 그 미국사를 가르치는 대학 교수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 사실’에서 ‘역사적 사고방식’으로 넘어간 역사교육의 변화추세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긴다. 역사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교과서는 스스로 탐구하고 토론할 것을 주문한다. 이를 위해서라면 교과서를 빽빽한 사실 서술로만 채울 필요도 없고, 교과서 집필 기준도 지금보다 훨씬 더 느슨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옛날과 달리 요즘은 꽤 괜찮은 번역ㆍ해설서가 많으니 아예 삼국사기ㆍ삼국유사, 혹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나 미국의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같은 책 몇 권을 기본 텍스트로 지정해 중고등학생들에게 그냥 통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자라서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걸 만들 때 써먹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태정태세문단세, 달달 외는 걸 좋아해도 된다. 다만, 같은 입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검색 한번만 하면 다 나오는 걸 외워야 하는 교육을 바꾸자” 같은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정도면 그나마 교과서 게임의 합리적 룰이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이 룰도 큰 의미는 없다. 좌편향 논란은 역사 교육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정치적 이미지 전쟁”을 위해 역사 교과서를 불쏘시개로 쓰는 것일 뿐이다. 역사 교육만 불쌍하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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