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알’뜰하고 ‘쓸’모 있는 ‘신’기한 나만의 ‘맞’춤 튜닝

허술해도 가성비는 최고… 퀵 오토바이의 이유 있는 변신

만화영화 속 로봇을 연상시키는 박기욱(62)씨의 수제 방풍막. 그와 그의 오토바이를 15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 앞에서 만났다.
운전석에 앉으면 두 개의 창 위에 빼곡히 적힌 거래처 연락처가 한눈에 보인다.
야간에 주문표를 확인하기 위한 손전등도 매달았다.
핸들 위에 꾸민 작은 수납 공간엔 박씨가 즐겨 듣는 라디오와 메모장이 자리 잡고 있다.

“20년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생활의 지혜죠.”

15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종합시장에서 만난 오토바이 배송기사 박기욱(62)씨가 자신이 직접 개조한 오토바이를 소개하며 말했다. ‘오랜 경험과 지혜의 결정체’라는 자부심만큼이나 그의 오토바이는 범상치 않은 외관을 뽐내고 있었다. 단연 눈에 띄는 건 만화영화 속 로봇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색 방풍막. 평범한 오토바이 앞부분에 아크릴 판으로 뼈대를 대고 박스테이프를 겹겹이 붙여 두 개의 창을 냈다. 뒷좌석엔 이삿짐 상자와 애완견 철망을 재활용한 적재장치도 단단히 고정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이날 자체 제작한 비닐덮개까지 씌우고 나니 그의 말마따나 ‘완벽 그 자체’다.

방풍막에 대한 박씨의 자랑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는 “지난겨울 틈틈이 만들었는데 워낙 튼튼해서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없다”고 했다. “예전에 일주일 수입이랑 맞먹는 25만원이나 들여 업체에 맡겨 봤지만 얼마 못 가 너덜너덜해졌다”고도 했다. 자체 개조를 결심한 계기다. 그가 ‘셀프 튜닝’에 들인 비용은 총 5만원, 전문 개조 업체 제품만큼 세련되진 못해도 그만의 아이디어와 효율성을 구현하기엔 넉넉한 액수다. 야간에도 주문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방풍막 기둥에 손전등을 달았고 적재함 뒤쪽엔 헬멧 걸이와 자전거용 반사판까지 부착했다. 운전석에 앉아 거래처 연락처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일의 능률도 오를 것이다. 어느새 의류 부재와 원단을 가득 실은 그만의 맞춤 오토바이는 배송지를 향해 유유히 사라졌다.

박씨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이삿짐 상자와 애완견 철장으로 만든 적재함을 고정시켰다. 화물이 비와 눈에 젖지 않도록 비닐 덮개도 직접 고안했다.
헬멧 걸이와 추가 후미등으로 꼼꼼함과 안전을 확보한 수제 적재함.

의류 상점이 밀집한 동대문시장 일대에선 박씨의 경우처럼 ‘셀프 튜닝’한 오토바이가 흔하다. 전문 개조 업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적재함이나 차체 개조 외에 방풍막과 핸들 커버 등 소소한 부품은 자신이 직접 만들거나 재활용품으로 해결한다. 비닐, 장판, 아크릴 등 값싼 재료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박스테이프나 노끈으로 고정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특히 박스테이프는 강력한 접착력과 방수 기능, 내구성 덕분에 수많은 배송기사들의 사랑을 받는다. 운행 시 목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천막용 비닐을 헬멧에 부착하거나 낡고 갈라진 핸들 커버에 비닐봉지를 씌울 때도 박스테이프는 ‘딱’이다. 운행과 직접 관계가 없는 부품이나 헬멧의 파손된 부위에도 박스테이프는 어김없이 붙어 있다.

하나같이 허름하고 투박한 탓에 궁상맞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루 종일 거리에서 버는 수입이 고작 6만~7만원대인 배송기사들로선 1,000원짜리 한 장도 허투루 쓸 수 없는 현실이 더 무섭다. 청계천에서 만난 배송기사 임모(65)씨는 “하루 12만원 벌어서 사무실에 16,000원 떼 주고 기름값, 밥값, 수리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가뜩이나 중국으로 옮겨간 공장이 많아 일은 점점 줄고 걱정이다”라며 한숨을 지었다. 그의 오토바이 손잡이에 씌워진 검정 비닐봉지에선 빠듯한 삶의 고단함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종로 일대에서 주로 활동한다는 김동용(50대 후반)씨는 검은색 테이프를 운전석의 PDA 단말기 거치대에 정성스럽게 붙여놓았다. 1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장만한 만큼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콜 수신용 PDA 4대를 한 번에 고정해 주는 이 거치대를 “나와 식구들의 생명줄”이라고 했다. 그의 시선은 어느새 하루에도 수백 번씩 눈길을 마주친다는 거치대로 향했다. 그리고 그 위에 써 놓은 다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사고’ ‘힘들어도 웃자’

오토바이 배송기사 김동용씨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다짐으로 콜 수신용 PDA 거치대에 ‘힘들어도 웃자’ ‘무사고’ 등의 문구를 적었다.
배송지를 향해 달리다 보면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동대문시장 주변에선 찬바람을 막기 위해 박스테이프로 헬멧에 비닐을 부착한 배송기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핸들 커버와 차체 곳곳을 박스테이프로 임시 보수한 오토바이도 흔하다.
장판과 패널, 비닐 등을 재활용해 만든 수제 액세서리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륜차 개조 법규 준수해야

동대문시장 주변에선 적재함을 뒤로 길게 덧붙이거나 지지대를 높이 세운 배송 오토바이를 흔히 볼 수 있다. 하루 배달 횟수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한 번 운행할 때 더 많은 짐을 실어야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높이거나 넓힐 수는 없다. 자동차 및 자동차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이륜차는 총 길이 2.5m(대형은 4m), 너비 2m, 높이 2m를 초과해선 안 된다.

개조 전 신고도 필수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자치단체장에게 신고 후 승인을 받아 개조하고 나면 45일 이내에 신고 내용대로 개조했는지를 확인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불법 튜닝으로 간주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조금이라도 더 싣고 싶은 욕심에 적재장치 밑에 박스를 추가로 달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번호판을 가릴 경우 형사처분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번호판을 아예 박스에 부착한 배송 오토바이가 자주 보이는 이유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김희지 인턴기자(이화여대 사회학과 3)

적재함을 늘이기 위해 달아놓은 박스에 번호판을 붙인 오토바이.

특장차 업체를 통해 개조한 삼륜형 오토바이에 플라스틱 슬레이트와 이삿짐용 박스로 만든 지붕 및 방풍막이 부착돼 있다.
배송 주문을 받은 박기욱씨가 손수 꾸민 오토바이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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