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되면 되풀이되는 전관예우 논란
언제까지 논란으로만 방치할 건가
대법관들부터 새 길을 낼 수 없나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판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이들이 머리 속에 그리고 가슴에 담은 법관으로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상순 선임기자

전관 ’예우’라니, 조어부터 틀렸다. ‘예의를 지키어 정중하게 대우함.’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예우(禮遇)의 뜻이다. 거칠게 말하면 추악한 관행, 점잖게 따져도 떳떳하지 못한 특혜성 거래를 일컬을 말이 아니다. 어불성설의 조어만큼이나 이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심하게 뒤틀려 있다. 다수 국민은 전관의 힘을 한껏 부풀린 ‘카더라~’에 기대 ‘유전무죄 무전유죄’ 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법원은 절박한 이들에겐 동아줄이나 다름없을 ‘밥 한끼, 전화 한 통, 그리고 도장 값’의 위력을 짐짓 모른 체해 왔다. 사법현실의 최대 비극이자 희극이다.

전관특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상고심 변호인 명단에 차한성 전 대법관이 이름을 올리면서다. 차 전 대법관은 퇴임 1년 만인 2015년 변호사 개업 신고를 냈다가 변협의 반려로 홍역을 치렀고, “상당기간 공익활동에만 전념하겠다”는 다짐 끝에 변호사 배지를 달았다. ‘상당기간’은 2년이 채 못됐다. 지난해 이미 상고 사건 10건을 맡은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이재용 사건 수임은 포기했지만, 공익활동에 전념한단 다짐으로 돌아갈 것 같진 않다.

이번 사안은 고위 법관이 소나기를 피해 전관 변호사로 ‘안착’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직전 소속기관 사건을 맡을 수 없는 1년은 대학에 적을 뒀다가 조용히 변호사 등록을 하고, 운이 나빠 논란에 휩쓸리면 “공익활동에 전념”을 공언하고, 든든한 울타리를 갖춘 로펌을 찾고, 한동안은 선임계 없이 변호팀에 묻어가다가, 관심(혹은 감시)이 수그러들면 본격적 활동에 나선다. 이번 일을 잠깐의 소동으로 흘려 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고질인 전관특혜 문제가 왜 매번 뻔하디 뻔한 논쟁의 되풀이로 끝나고 마는지도 엿볼 수 있다. 논쟁을 촉발한 사건의 당사자에겐 형평성을 앞세운 동정이 쏟아지고, 전관특혜를 원천 봉쇄할 법안 추진은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방패에 막혀 첫 걸음도 떼지 못하고, 언젠가 법복을 벗을 미래의 전관들은 먼산만 바라보며 침묵의 카르텔에 숨는다. 여론에 떠밀려 찔끔 내놓는 대책도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대법원은 2016년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상고심 사건은 단 하루라도 같이 근무한 대법관이 맡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지난해 사건들을 들춰보니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여럿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다를까. “전관예우는 없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반복하지 않은 것만도 큰 진전이긴 하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 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하지 말자”고 했다. 전관예우 관련 실태조사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수임 제한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실태조사도 시작하기 전에 선부터 그어 실망을 안겼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는 저서 ‘법률가의 탄생’에서 전관특혜를 ‘대륙식 경력 법관 시스템의 왜곡된 변형’이자 ‘영미식 법조 일원 시스템의 기형적 수용’인 불량 법원 조직, 그리고 검찰의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수사 관행의 결합에서 배태된 폐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문제의 뿌리가 깊고 넓고 복잡하다는 얘기다. 더 늦기 전에 난마처럼 얽힌 사법개혁 의제들을 모아 차분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묻고 따져야 겨우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아낼 수 있을 터이다.

그렇다고 근본적 해법을 내기까지 이 부조리극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감히 바라건대, 말 그대로 ‘큰’ 법관이어야 할 대법관 출신들부터 사법신뢰를 밑동부터 갉아먹는 전관특혜의 자장에서 벗어나 새 물길을 틀 수는 없을까. 전례도 있다. 전수안, 김영란 전 대법관은 아예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사법 약자를 돕는 공익활동에 전념하거나 후학 양성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더 많은 전ㆍ현직, 그리고 미래의 대법관들이 이에 동참하길 바란다. 법적 강제 없이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매우 구차한 선택으로 비쳐질 날을 고대한다.

이 바람은 한낱 백일몽이 되고 말까. 그래도 나는 묻고 싶다. 당장 올 8월 법복을 벗을 세 분의 대법관, 그리고 그 뒤를 이을 신임 대법관들에게. 대법관님, 쿠오바디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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