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소환 5일만에 영장 배경

소환당시 기초적 사실관계도 부인
‘전 대통령 예우’ 검찰 고민 덜어줘
‘정치보복 프레임’ 사전차단 목적도
“불구속 바람직하나… 검찰이 판단을”
박상기 법무, 문 총장에 의견 제시
결국 수사팀 의견 존중 영장 결심
[저작권 한국일보] 이명박 전대통령 영장 청구 핵심 혐의. 강준구 기자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는 ‘자초위난(自招危難ㆍ스스로 화를 초래해 곤란한 지경에 빠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초 이 전 대통령 소환 전만 해도 검찰 안팎에서는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석도 분명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데,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기가 검찰이나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어서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한달 간격으로 구속 수감된 적이 있지만, 당시는 군사정부가 끝나고 문민 대통령이 첫 집권한 시점으로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매우 높았던 때라 지금과 바로 견주기는 곤란하다. 또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2016년 10월 이후 1년6개월 가까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어지면서, 정치권과 일부 여론은 잇따른 전직 대통령 수사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막상 이 전 대통령을 소환해 보니, 그가 너무나 명백한 것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검찰 고민을 덜어줬다는 얘기가 나왔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내가 수사 검사였다면 이 전 대통령의 발뺌을 보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라며 “속으로는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혐의를 ‘모르쇠’로 부인하거나 검찰이 제시한 증거자료를 “조작”이라고 치부하는 등 이 전 대통령 스스로 구속수사 필요성을 높였다는 뜻이다. 특히 상당수 혐의를 측근들 탓으로 돌리면서, 앞으로 남은 수사에서 집사나 금고지기를 했던 이들 자백을 손쉽게 받아낼 수 있다는 점도 검찰이 거둔 부수입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검찰이 소환 조사 5일 만인 19일 전격적으로 영장을 청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는 소환부터 청구까지 15일, 박 전 대통령 때는 6일이 걸렸다. 결국 청와대가 “구속영장 청구 권한을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맡기겠다”고 발표하면서 영장 청구 여부를 오롯이 혼자 결정하게 된 문 총장은, 되레 과거 전직 대통령의 구속 처리 때보다 빨리 영장 청구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청와대 의중을 살피느라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지만, 검찰총장이 전권을 쥔 상황에서 문 총장이 할 일은 수사팀 보고를 받아 결심만 하는 되는 것이 전부였다.

검찰 안팎의 구속영장 청구 기류가 강했지만, 문 총장은 최대한 고심을 거듭하다 이날 오후 늦게 결심을 내렸다. 문 총장은 이날 오후 5시쯤 정부과천청사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직접 만나 20여분간 논의했다. 박 장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구속 수사나 재판이 바람직하나, 증거인멸 가능성, 다른 피의자와의 형평성 및 국민 법 감정 등도 함께 고려해 검찰에서 최종 판단하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결국 문 총장은 수사팀 의견대로 영장 청구를 결심했다.

검찰이 소환 조사 후 닷새 만에 초고속 영장 청구를 한 배경은 또 있다. 언론 등을 통해서만 알려졌던 이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혐의를 파악한 변호인단이 대응 전략을 세울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 프레임을 내걸어 사건 본질을 왜곡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신속한 결정을 내린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은 구속영장 발부에 필요한 증거와 핵심 관계자들 진술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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