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선거에서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을 메니페스토(manifesto)라 한다. 선거 전후로 공약 실천 가능성 및 여부를 따지는 시민운동 또한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당시 시민단체들이 공약 검증운동을 본격화하면서 정치권에서 정책선거의 기틀이 마련됐다. 정치인의 약속은 공약(空約)이라 하여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한 공수표 정도로 치부되던 때다.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내놓거나 당선 이후 공약을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이 지금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 공약 파기의 대표 정치인으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747(연간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이라는 대표 공약으로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지만 목표에 근접한 성과가 하나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시대적 요구에 편승해 경제민주화 공약을 쏟아냈지만 집권 뒤 기초노령연금을 시작으로 잇따라 공약을 파기했다. 나중에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조차 거둬들였다. 세상을 바꾼 촛불혁명으로 물러난 그의 공약집 제목은 공교롭게도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었다.

▦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에 관한 한 강박증을 보일 정도로 비타협적이다. 지난해 정부 출범 직후 조각 과정에서 5대 인사원칙 훼손 논란이 일자 문 대통령은 “스스로 한 말은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면서 공직 임용기준 공약을 준수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바 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정해구)는 대선 공약을 포함한 100대 국정과제의 이행 점검 업무를 넘겨받아 공약을 챙기고 있다. 위원회는 오는 5월 국정과제보고회에서 1개년 이행 실적을 공개한다.

▦ 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밀어붙이는 것도 공약 사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문 대통령 공약집에는 6월 지방선거에 맞춘 개헌 국민투표 일정이 분명히 적시돼 있다. 대통령의 공약은 반드시 이행되는 게 맞다. 하지만 국정운영에서 유연성도 필요한 법이다. 모든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밀어붙였다가 개헌안 부결 사태라는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마침 공약집에는 ‘개헌관련 공약 내용을 고집하지 않고 국민의 의견에 따른 개헌 추진’의 단서도 달아 놓았다. 국회 개헌 논의를 재촉하는 고강도 압박 수단 정도로 활용하는 게 현명하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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