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대학병원 근무 시절
주임교수가 나를 왕따시키고
리베이트 받아 해외 학회 출장
전공의에게 준 격려금 착복도”
의원서 행한 유령수술 녹취록도
게티이미지뱅크

한 성형외과 전문의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남긴 유서를 통해 본인이 겪은 의사들의 폐쇄적인 갑질 문화와 리베이트, 유령의사 등 의료계에 만연해 있는 부당한 민낯을 낱낱이 고발했다. 이 내용은 주말 동안 의사들 사이에 급속히 퍼지며 파장이 일고 있다.

대학병원 교수였다가 지난해부터 강남의 한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에서 일해 온 A(48)씨는 지난 17일 오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블로그에 유서를 남겼다. 현재 이 블로그 글은 비공개 처리되어 있으나, 인스턴트 메신저 등을 통해 의료계에서 급속도로 공유되고 있다.

A씨는 ‘내 블로그 마지막 글이다’로 시작하는 A4용지 12쪽에 달하는 유서에서 3년 가까이 근무한 수도권 모 대학병원에서 겪은 의사 사회의 갑질과 비리 등을 폭로했다. 그는 자신이 2014년부터 근무했던 이 병원이 “오래된 착취가 일성화된 곳”이라며 “왕국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내쳐졌다”고 적었다. 그가 타병원에서 이직해 적극적으로 환자를 늘려가고 진료수익을 확대해 가자 B 주임교수가 자신을 점점 경계하다 전공의를 단 한 명도 배정해주지 않는 등 ‘왕따’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그는 “전공의들이 모두 B 교수 옆에서만 늘 대기해야 했고, 결국 나의 담당 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도 못하는 이들이 반복됐다”며 “나는 전공의 일부터 수술, 교수일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했다”고 적었다.

A씨는 논문 대필 등 고질적인 비리도 횡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B교수가 전공의들에게 자신의 논문을 대필하게 해 연구업적을 축적했으며 병원과 협약을 맺은 개원의들이 전공의들에 준 격려금도 착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B교수가 리베이트를 받아 매년 해외에서 열리는 학회를 다녔다고도 적었다.

B교수는 그러나 A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A씨는 평소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등 정신적ㆍ신체적으로 힘든 상태였다”며 “A씨의 유서내용을 반박할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에서 ‘유령수술(불법 대리수술)’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2017년 가을에 문을 연 이 의원에서 조직적으로 유령수술이 시행됐다”며 한 의사와 대화한 녹취록을 증거자료로까지 올렸다. 녹취록에서 유령수술을 전담했다는 한 의사는 “병원장이 상담한 환자를 수술하라는 명령을 어길 수 없어 수술을 하고 있다. 위에서 하라고 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병원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병원들의 환자에 대한 높은 문턱도 지적했다. 목 디스크 등으로 스스로 병원 치료를 자주 받아야 했다는 그는 “환자가 되어보면 한국에서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 원하는 의사 예약, 충분한 설명 등은 너무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의사인 나도 이런데 일반 환자들은 더더욱 힘들 것”이라고 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폐쇄적인 대학병원 교수사회, 의사가 자본가가 돼 다른 의사들을 착취해야 성공할 수 있는 개원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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