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전 의원이 18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공원에서 6ㆍ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한 한국판 미투(#MeToo)는 공교롭게 진보 진영을 휩쓸고 있다. 이윤택 오태석 고은 박재동 등 박근혜 정부 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도 살아남았지만 미투에는 맥없이 무너졌다는 우스개 소리마저 나온다. 정치권도 안희정 정봉주 민병두 등이 미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진보 진영에만 미투가 터져 나오는 진짜 이유가 있을까. 일각에선 과거 운동권이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ㆍ성추행 문제를 조직의 보위나 운동의 대의를 위해 덮었던 데서 원인을 찾는다. 일본 괴뢰정부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동료 여대생을 미인계로 활용한 중국 지하조직 얘기를 다룬 영화 ‘색, 계’를 예로 들며 느슨한 젠더 인식을 마치 진보 진영 전체의 문제인양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젠더 권력의 문제인 미투를 진보ㆍ보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9년 전 장자연 사건은 대표적 사례일 뿐, 캐디를 성추행한 전직 국회의장, 승무원들을 기쁨조처럼 대했다는 재벌 회장님 등 보수 진영의 젠더 이슈도 진보 못지 않게 많다. 오히려 미투의 진보 진영 집중 현상에 대해 “보수 진영에는 성평등 감수성을 장착한 여성들이 애초에 진입하기 어려운 토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나영 중앙대 교수)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판이다. 젠더 문제에서 보수가 도덕적 우위를 차지한다는 건 희망적 사고이거나 아주 일시적인 결과론적 해석에 불과하다.

정말 문제가 되는 건 미투의 진보 진영 집중 현상이 아니라 ‘사이비 미투’, ‘미투 공작설’로 대표되는 일부 진보 인사들의 엇나간 인식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는 “일회적인 성추행, 그것도 당시 권력이 없는 사람의 미수행위는 미투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야인 시절’이던 7년 전 일로, 그것도 ‘한 여성’이 제기한 ‘단 한 번의 성추행’ 논란으로 위기에 몰린 정봉주가 아무리 안타깝더라도, “용기 있는 폭로가 사이비 미투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했다”는 발언은 해선 안 될 말이었다. 방송인 김어준은 아예 “안희정에 이어 봉도사(정봉주)까지, 이명박 각하가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며 미투 공작설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미투는 약자이기 때문에 피해 당시에는 말할 수 없고, 이후에도 “왜 당하고도 가만히 있었냐”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숨죽여야 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피해자의 뒤늦은 외침에 공소시효가 없다고 여기고, 여론의 법정이 아닌 법원에서 재판 받을 권리, 무죄추정 원칙의 적용을 예외적으로 보류하는 것은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이 더 큰 가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기본법(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 그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인간 존엄성을 다른 권리와 비교 형량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과연 진보의 가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2012년 총선 때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 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문 등으로 낙승이 예상됐던 민주당은 참패했다. 한미FTA 폐기, 제주해군기지 반대 등 지나친 좌클릭 공약도 문제였지만 ‘나꼼수’ 멤버 김용민의 막말 파문과 나꼼수 인기에 편승한 당 지도부의 안일한 대응이 빚어낸 결과였다. 등장 인물과 상황 전개가 지금의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 되지 않는가.

피해자 폭로는 완벽한 소설이라는 정봉주의 주장은 수사기관의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공정하고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보 인사 입에서 사이비 미투 감별 잣대와 음모론이 흘러나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 국민들은 여권에 묻는다. 당신들은 가해자의 손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가르고 있는가. 대의를 위해 미투는 잠시 뒤로 미뤄도 되는가. 대선에 공이 있다면 나꼼수 류가 소도(蘇塗)에 숨어도 지켜만 볼 것인가. 김영화 정치부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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