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스토리(8)] 열두살 유망주서 돌고돌아 최고령 프로 입단

14번의 도전 끝에 여자 프로바둑기사 입단 기록을 세운 도은교 초단은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며 "이제 유망주로서, 보여줄 게 많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흐느끼는 음성으로 ‘고생했다’며 걸려 온 둘째 언니의 축하 전화가 그의 눈물샘을 자극한 탓이었다. 2년 전 이세돌 9단이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에게 3연패를 당한 이후 1승을 올렸을 때 TV 생방송 진행 도중 쏟았던 감동의 눈물과 느낌이 비슷했다. 지난 8일 국내 여자 프로바둑기사 최고령 입단 기록을 세운 도은교(33) 초단의 당시 기억은 그랬다.

“막상 제 입단이 결정됐을 땐 무덤덤했어요. 그런데 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울컥하더라고요. 말은 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 동안 해왔던 고생을 서로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16일 도 초단이 밝힌 입단 여정은 가시밭길이었다. 14번의 도전 끝에 이뤄낸 프로바둑 기사 입단이었기에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도 초단의 바둑 입문은 순조로웠다. 바둑 애호가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9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바둑 돌을 쥐게 됐다. 도 초단은 스스로 바둑 학원 등록을 원했을 만큼, 바둑에 대한 애착은 컸다. 두각도 빨리 나타냈다. 입문 3년 만인 12살 때 세계여자아마바둑선수권(옛 대한생명배)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 초단의 바둑 인생 상승세는 거기까지였다. 정작 중요한 프로기사 입단 심사에 번번이 탈락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입단 심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입단 심사에서 떨어지는 건, 단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치부했습니다. 제가 연구생 또래들 중에서도 언제나 상위권에 있었고 세계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자신감이 충만했거든요. 그게 자만심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프로기사 입단 실패 원인에 대한 그의 진단은 냉철했다.

그렇게 자신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못해 허둥댈 무렵, 이번엔 기울어진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바둑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바둑도장 회비 등을 포함해 제 바둑 공부에만 들어가는 비용이 매달 100만원에 달했거든요. 억울하고 서운했지만 바둑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상황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30대 여자 프로바둑기사 입단 기록을 세운 도은교(왼쪽에서 세 번째) 초단이 지난 8일 한국기원에서 목진석(왼쪽 첫 번째) 국가대표 감독과 손근기(두 번째) 프로바둑기사회 회장, 유창혁(네 번째) 한국기원 사무총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바둑만 알고 살아왔던 그에게 공부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수학책부터 풀면서 죽기 살기로 학업에 매달렸다. 열매는 달콤했다. 연세대 수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국내 대형 증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삶을 꿈꿨던 그에게 회사 내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샐러리맨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3년 만에 사표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뭔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프로바둑 기사는 아니더라도 바둑과 관련된 일을 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가 공개 오디션을 통해 바둑TV 진행자로 발탁되면서 바둑계로 돌아온 이유다.

그렇게 바둑계로 돌아왔을 무렵, 주변에선 그의 프로기사 입단 재도전을 부채질했다. 여가시간에 바둑도장에 나가 취미로 연구생들과 바둑을 두는 그의 모습이 금세 ‘다시 프로기사 입단을 준비한다’는 소문으로 부풀려졌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프로기사 입단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다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주변의 시선 덕분에 프로기사 입단 도전 용기도 냈지만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를 피할 수 없었다. ‘어릴 때도 실패했던 프로기사 입단이 서른 살이 다 돼 가능하겠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잖았다. “가출도 했어요. 나중에 부모님이 저를 이해해 주시고 뒷바라지도 해주셔서 프로기사 입단에 성공했지만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쳤던 만큼, 그는 또 다른 족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단지 이름 뿐 아닌 진짜 실력으로 인정 받는 프로바둑 기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이제 막 입단한 ‘유망주’거든요. 아직 보여줄 게 많습니다.” 30대 최고령 여자 프로바둑기사로 반상 포석을 마친 그의 행마에 주목할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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