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24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을 앞두고 호찌민시 한인 사회가 뒤숭숭합니다. 전직 대통령들은 들렀던 호찌민시를,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교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을 문 대통령은 들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른바 대통령의 ‘호찌민한인회 패싱(배제)’ 논란입니다. 앞서 호찌민시에는 2004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2013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방문했지만 2015년 10월로, 퇴임 후의 일입니다.

17일 ‘한인회’ 한 관계자는 “작년 11월 베트남 방문 때도 호찌민시를 찾지 않았던 문 대통령이 이번에도 한인들이 가장 많은 호찌민에 안 온다고 한다”며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통령의 호찌민 교민사회 홀대 이야기가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 중부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차 베트남 방문 때 호찌민시를 찾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 호찌민시에서 있었던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개막식)에도 영상축전만 보냈습니다.

지난해 11월 16일 호찌민음대 대공연장에서 열린 베트남메세나협회 창립 기념 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재외 한인상공인연합회(KOCHAMㆍ코참) 중에선 처음으로 설립한 메세나협회다. 활동 특성상 현지 진출 한국기업들이 주가 되는 사회공헌이기는 하지만 시끄러운 교민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인회 관계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 1975년 베트남 통일 전 사이공이라 불리던 남부 호찌민시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한인회는 그 규모를 14만명으로 보고 있으며, 대사관에서는 8만~1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인근의 하이퐁과 중부 다낭 거주 한인(5, 6만명)의 두 배 수준입니다. 호찌민시는 거주 한인 규모도 규모지만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진출, 국익 확대는 물론 양국 우호협력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베트남 수출의 25%를 책임지고 있는 삼성전자가 북부에 생산공장을 짓고, LG가 하노이 인근의 하이퐁으로 진출하면서 예전 같진 않지만 호찌민시는 여전히 베트남 경제의 중심으로 통합니다.

호찌민시에는 지난해까지 둘이던 ‘한인회장’이 지금도 둘입니다. [뒤끝뉴스] 호찌민 교민사회가 쑥밭이 된 사연 (2017년 7월 기사)

작년 말 새로운 한인회장 선거가 있었지만, 두 곳에서 각각 선거가 치러졌고,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호찌민한인회’를 언급할 때에는 그 앞에 수식어를 붙여야 할 정도입니다. ‘이충근 한인회’와 ‘김규 한인회’ 식으로 말입니다.

이충근 회장은 지난해 호찌민 교민사회 원로, 경제단체 등이 참여한 한인사회정상화추진위원회가 치른 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 김규 회장은 자신이 이끌던 한인회의 선관위 주관 선거에 출마해 회장이 됐습니다. 김 회장은 2015년말 2년 임기의 한인회장 선거직후 학력위조 문제가 불거지면서 당시 선관위가 당선 취소한 인물입니다. 지난해 5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도 “김규는 적법한 한인회 대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2017년 7월 호찌민 시내 한 식당에서 한인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대책회의에 나선 호찌민 한인사회 원로들.

호찌민시가 베트남의 경제 중심이고, 그 곳에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을 대통령이 찾지 않는 이유로는 빠듯한 일정과 함께 여전히 진행중인 이런 한인회 문제가 거론됩니다.

문 대통령은 호찌민시를 찾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22일 오후 하노이에서 열리는 교민 환영, 만찬 행사에도 호찌민시 ‘한인회장’은 그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이충근 한인회’ 측 관계자는 “처음에는 이 회장이 교민 환영, 만찬 행사 참석 대상자로 이름이 올라갔다가 뒤에 빠졌다”면서 “부회장단에서만 4명이 참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4명의 참석자 모두 헌법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소속 위원들인 점을 감안하면, 한인회 부회장 자격으로 초대 받은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최근 남북ㆍ북미 정상회담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김규 한인회’ 측에서는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이충근 한인회’에서는 대사관과 총영사관이 원로들과 노인, 경제인 등 각 단체 대표들로 꾸려진 한인사회정상화추진위원회를 통해 치러진 선거 결과를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사관에서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친목단체를 인정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논란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호찌민한인회 패싱 논란과 그에 대해 한인사회가 느끼는 서운함에 대해 들은 타지역의 한 한인회장은 호찌민한인회가 더 낮아져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결국 저 난리는 만찬장에 초대 받지 못해서 저러는 것 아니냐. 지역 한인사회가 저 모양인데 무슨 얼굴로 대통령 얼굴을 보려고 하느냐. 한인들 뒷바라지 제쳐놓고 자신의 명예 내세우려는 것 아니냐. 교민들의 존경을 먼저 받는 한인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에 베트남 한 지방성의 친선단체 관계자도 ‘한인회’ 이름에 걸맞은, 품위 있는 행동을 주문했습니다. “지난해 한인회장이라는 자가 장학금 전달하겠다고 해서 프로그램 다 짜놓고 있었는데, 행사에 나타나지 않아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주기로 한 장학금은 어디로 갔을까.”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지난 1월 23일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이 AFC U-23 결승 진출을 확정 짓자 호찌민 시민들이 시내거리에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한인회가 교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가. 한국 이미지 향상에 도움을 주는가. 아니면 그들을 이용하고 있는가."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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