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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기적’ 넘어 금메달 꿈 꿨던 ‘반상회 팀’

입력
2018.03.16 18: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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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휠체어 컬링 대표팀 스킵 서순석(왼쪽)이 16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패럴림픽 준결승에서 노르웨이에 패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한국은 17일 캐나다와 동메달결정전을 치른다. 강릉=연합뉴스
한국 휠체어 컬링 대표팀 스킵 서순석(왼쪽)이 16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패럴림픽 준결승에서 노르웨이에 패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한국은 17일 캐나다와 동메달결정전을 치른다. 강릉=연합뉴스

“고개 숙이지 마세요. 잘 했어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휠체어 컬링 준결승전이 벌어진 16일 강릉 컬링센터. 스킵 서순석(47), 리드 방민자(56여), 세컨드 차재관(46), 서드 정승원(60)과 이동하(45)로 구성된 한국은 연장 접전 끝에 노르웨이에 6-8로 아깝게 지며 금메달 꿈을 접었다. 그러나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괜찮아” “괜찮아”를 연호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 컬링은 동계패럴림픽에서 아직 금메달이 없다. 2010년 밴쿠버 은메달이 최고 성적이다. 당시에는 이천 장애인훈련원 수영장 물을 얼려 임시 훈련장으로 쓸 정도로 열악했다. 반면 이번에는 각종 과학 장비와 지원을 받으며 꼼꼼하게 준비해 ‘수영장의 기적’을 넘어설 거란 기대가 높았지만 아쉽게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5명의 성(姓)이 달라 ‘오성(五姓) 어벤져스’로 불린 한국 휠체어 컬링 팀은 조별리그에서 9승2패를 기록하며 당당히 1위로 4강에 올랐다. 대회 내내 눈부신 선전과 투혼으로 큰 감동을 안겼다.

경기마다 허심탄회하게 상의하며 더 좋은 작전을 구상하는 한국에 팬들은 ‘반상회 팀’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강릉=연합뉴스
경기마다 허심탄회하게 상의하며 더 좋은 작전을 구상하는 한국에 팬들은 ‘반상회 팀’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강릉=연합뉴스

팬들은 선수 전원이 경기 내내 쉴 새 없이 작전을 상의하는 대표팀을 보며 ‘반상회 팀’이라는 이색적인 별명을 붙였다. 티격태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서순석은 “싸울 때는 싸우고 풀 때 풀었다. 패럴림픽을 앞두고는 팀을 위해서만 집중하고, 속상한 일은 지우개로 싹싹 지워 모두 백지가 되기로 굳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날 3엔드 끝나고 2-4로 뒤진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의 마지막 샷을 책임지던 차재관이 1,2엔드에서 컨디션 난조를 보이자 그를 빼고 막내 이동하를 투입했다. 이동하가 두 번째 차례로 샷을 던지고 스킵 서순석이 마지막 샷을 책임지는 순서로 바뀌었다.

이동하는 조별리그 11경기를 치르며 2경기 밖에 뛰지 않았다. 부담이 클 법도 했지만 멋진 샷을 잇달아 선보여 흐름을 바꿨다. 4엔드에서 환상적인 더블 테이크아웃(한 번에 상대 스톤 두 개를 한꺼번에 쳐내는 것)을 성공했고 이어 서순석이 마지막 샷에서 역시 상대 스톤을 깔끔하게 하우스 밖으로 내보내며 2점을 얻어 4-4 동점을 만들었다.

올 해 만으로 마흔 다섯인 이동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고 열 살 아들에겐 슈퍼맨 같은 아빠지한 휠체어 컬링 팀에서는 귀여운 막내로 통한다. 2012년 컬링을 처음 시작해 그토록 원하는 태극마크를 달았기에 평창 대회를 준비하는 자세가 누구보다 남달랐다. 막내답게 밝은 농담으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하다.

한국은 7엔드 때 하우스에 상대 노란 스톤만 3개가 남아 있는 위기를 다행히 2점으로 막았다.

8엔드에서 2점을 따 극적으로 연장에 돌입하자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강릉=연합뉴스
8엔드에서 2점을 따 극적으로 연장에 돌입하자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강릉=연합뉴스
경기 내내 열띤 응원을 펼친 관중들. 강릉=연합뉴스
경기 내내 열띤 응원을 펼친 관중들. 강릉=연합뉴스

마지막 8엔드는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힘이 컸다. 한국이 불리한 상황에서 관중들은 “대한민국”을 목 놓아 외쳤고 심리적으로 흔들린 노르웨이는 자신의 스톤을 쳐내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마치 한국이 득점이라도 한 것처럼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졌다. 노르웨이는 또 다시 두 번의 스톤이 모두 하우스 밖으로 나가며 고개를 숙였고 서순석이 마지막 샷을 침착하게 성공해 2점을 따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연장에서도 긴장감이 팽팽했다. 한국 선수들은 부담이 컸는지 3번의 샷이 모두 호그라인에 못 미쳐 스톤을 버리고 말았다. 컬링에서는 스톤이 투구 지점에서 약 22m 떨어진 호그라인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은 서순석이 던진 회심의 마지막 샷이 하우스 밖으로 나가 끝내 득점에 실패했다.

한국은 이날 또 다른 준결승에서 중국에 진 캐나다와 17일 동메달결정전을 치른다.

서순석은 경기 뒤 “내 마지막 샷이 정말 아쉽다.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나고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내일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동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강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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