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지나다 로드킬 흔적을 만날 때면 시선을 거두고 얼른 마음의 움직임을 걸어 잠그게 된다. 학대 받은 동물들 사진이나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될 때도 그렇다. 생명이 사라지고 피와 털이 뒤엉킨 물질의 껍데기를 목격하는 일 자체가 끔직하고 괴롭거니와 인간이 아니었으면 회색 도로 한 복판에 붉은 사체가 나뒹굴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죄를 짓는 기분이다. 경칩 오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산란지로 이동하던 두꺼비 수백 마리가 올해에도 로드 킬을 당했다는 소식에 더욱 울적해진다.

슬퍼하고 외면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차에 깔린 고양이가 납작해졌으니 종이 접기 하듯 접어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상상은 슬픔과 죄책감으로 눅진해진 감상에선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고양이는 짓이겨진 살과 가죽이 아니라, 쉽게 찢기고 구겨지는 종이가 아니라, 강철판이 되었다. “무쇠 팔 무쇠 다리”를 지닌 “초강력 로봇”으로 다시 태어난 고양이는 무지막지하게 달려오는 자동차쯤은 한 팔로 휭휭 돌려 멀리 던져 버릴 것 같다. 자동차 보닛 위로 가뿐히 올라가 꼬리를 쿵, 내리치면 부주의한 운전자가 기겁하며 도망치는 뒷모습이 떠오른다.

“러시아 어떤 도시에서는 다음에 일하게 될 시장한테/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 잘하라는 뜻으로/사람들이 고양이를 후보로 내세워 표를 몰아주었다//고양이가 드디어 빛을 본 거다//구석구석 훑고 다닌 시간이 얼마였던가/잘못도 없이 쫓겨 다녀야만 했던 순간들/안타깝지만 억울한 죽음을 맞은 고양이들도 있었다”(‘고양이 만세’ 중)

사고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부러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죽이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한편에는 배고픈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병들고 다친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사람도 있다. 고양이를 개에 비해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요물’이니 ‘영물’이니 하며 멀리 했던 문화가 바뀌었다. 트위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은 고양이 사진이고, 가장 부러운 팔로워는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고양이만을 주제로 하는 잡지도 여럿 창간됐다.

고양이를 이야기한 아동문학 작품도 요즘 점점 더 많이 출간되고 있다. 동시집 ‘고양이가 나 대신’(이상교, 창비, 2009), ‘고양이 걸 씨’(장영복, 국민서관, 2014) 동화집 ‘고양이 조문객’(선안나, 봄봄, 2017), 청소년소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김중미, 낮은산, 2017)는 고양이를 단지 글의 소재로 삼는데서 끝나지 않고, 고양이라는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고 공감하면서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통찰하는 작품이 되었다. 눈치 안 보고, 느긋하고, 늠름한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간에게는 뜻밖의 놀라운 선물이 주어지는 것 같다. 고양이는 못 키워도, 고양이 책은 꼬박꼬박 읽어봐야겠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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