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검찰 소환]

참모들과 조사 대비하는 듯
전날 밤 11시 넘도록 방에 불빛
새벽부터 측근들 하나 둘 모여
검찰 향하는 승용차 모습 보이자
“즉각 구속하라” 시민 성토만 울려
8분 만에 서울중앙지검 청사 도착
통제선 밖 카메라 일제히 플래시
[저작권 한국일보] 검찰에 출석 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출발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전직 대통령의 쓸쓸하고 초라한 외출이었다. 검찰 소환 조사가 예정된 14일 서울 논현동 이명박(MB) 전 대통령 자택은 전날 밤부터 폭풍전야처럼 조용했다. 11년 전 대선 당시 역대 가장 많은 표를 받아 청와대로 입성했던 그를 응원하고 배웅하겠다고 찾아온 지지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날이 밝고 이 전 대통령을 태운 승용차가 집 밖을 빠져나갈 때조차 그가 마주한 사람은 ‘MB를 구속하라’는 성난 시민뿐이었다.

높은 벽돌담에 둘러싸인 이 전 대통령 자택에서는 전날 밤 11시가 넘도록 2, 3층 방에서 불빛이 새나왔다. 밤 늦게까지 참모들과 검찰 조사를 대비하는 회의를 하는 듯 긴장된 분위기가 엿보였다. 곳곳에 설치된 여러 대 폐쇄회로(CC)TV가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나온 경찰이 번갈아 경계를 섰다. 검은색 승용차가 집 밖으로 나와 시야에서 사라진 오후 11시6분, 2층과 3층 방이 차례로 소등됐다.

어둠에 잠긴 저택을 찾은 이는 신문 배달원뿐이었다. 지지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날 오후 한 지지자가 장미꽃을 들고 찾아온 게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3월 ‘박사모(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 회원 등 지지자 수백 명이 몰려 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던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과 비교하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대신 ‘MB를 구속하라’ ‘4자방(4대강ㆍ자원외교ㆍ방산) 비리 재산 환수’라고 적힌 피켓을 든 진보성향 원외 정당인 민중민주당 당원이 집 앞을 지켰다.

불이 다시 켜진 시간은 오전 5시20분. 취재진이 하나 둘씩 몰려들었고, 이재오 전 국회의원 등 측근들이 하나 둘씩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내가 잘할 테니 용기를 잃지 말고 잘 대처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경호인력 3개 중대(240명)를 배치해 자택 앞 골목을 통제하고 신분이 확인된 취재진과 일부 주민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오전 9시가 넘어서면서 집 앞이 술렁였다. ‘감방 가기 딱 좋은 날' '가훈이 정직-이명박 감방 가즈아’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펼쳐졌고, “MB 구속 수사” 촉구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윽고 오전 9시14분 이 전 대통령이 탄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1인 시위를 하던 한 여성은 "이명박을 즉각 구속하라. 더 이상 가만히 둘 수 없다"고 외쳤고, 한 시민은 이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이 지나가자 '국민혈세 도둑놈'이라는 피켓을 들고 "이명박 사기꾼"이라고 소리쳤다.

자택을 출발한 이 전 대통령은 4.8㎞ 남짓 떨어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8분 만인 오전 9시 22분 도착했다. 청사 출입구 양쪽으로는 7m 폭의 팔(八)자 모양 통제선이 설치됐다. 통제선 밖으로는 카메라 기자들의 사다리와 영상 카메라의 삼각대가 늘어섰고 100여명 기자만이 통제선 밖에서 '근접'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서문과 인근 법원삼거리에는 진보·노동단체 회원들이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며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벌이고 각종 퍼포먼스를 했다. 짙은 감청색 정장과 하늘색 넥타이 차림으로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이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포토라인으로 이동하자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13일 오후 10시 30분쯤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에 불이 켜져 있다.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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