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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과잉정치의 시대

입력
2018.03.14 14:5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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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현상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참여는 단순한 정치과정에 대한 개입을 넘어, 자신을 규정하는 장이자 소속감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 촛불 혁명으로 대변되는 정치참여의 확대는 국민의 정치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강화시켰다. 촛불 혁명은 정치사에 유례없는 평화적 방식으로 정권을 교체시켰고, 뒤이은 일련의 정치적, 제도적 변화의 폭도 결코 작지 않다. 적폐 청산과 미투 운동을 비롯한 사회적 구습의 타파와 규범체제의 변화, 그리고 남북관계를 포함한 안보환경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속도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정치적 의제는 그날그날 언론과 일상생활의 주요 화두가 된다. 일상은 정치화되고, 정치는 일상화된다. 부동산 주제이든, 교육 주제이든 많은 대화들은 ‘기승전정치’로 끝나고, 금새 육두문자가 덤으로 붙는다. 별것 아닌 주제에 나라 걱정하면서 술만 퍼 마시게 된다는 ‘임꺽정 증후군’이 번져나간다. 특별히 다른 관심사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는 손쉬운 대화의 소재이자 분노와 불만의 표출 경로가 된다. 수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정치 기사는 진영을 불문하고 과잉 상태에 이르러 있다.

정치에의 관심은 중독적이다. 전 정권에 대한 수사가 사이다처럼 따라지고, 깜짝 놀랄 자극적인 뉴스는 매운 떡볶이 같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정치는 한편의 드라마이자 스포츠가 되고, 정치권과 언론은 그 시청률을 거머쥐고자 종종 막장의 요소도 삽입시킨다. 형사소송법 상 피의자에 대해서 법원에 출석을 확보하고 증거인멸의 위험을 막기 위한 수단인 ‘구속’은, 축구경기의 골인처럼 인식되고, 한 골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을 동반한다. 하지만 밤새 끊임없는 갈증은 계속된다.

정치과잉은 휴유증을 낳는다. 정치의 과잉은 감정의 과잉을 동반하고,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다. 흥분과 증오가 일상화되면서 정치적 피로는 축적되고 점점 더 감정적인 배출이 필요하게 된다. 나아가 단순화된 진영 논리는 종종 이슈와 가치의 왜곡을 가져오기도 한다. ‘프레임’으로 대변되는 진영의 논리는 강력한 자성으로 중간지대를 흡수해 나간다. 상대 진영에 대해 날카로운 각을 세울수록 소셜미디어의 ‘좋아요’는 늘어나고 친구들의 응원도 생긴다. 댓글은 의견 소통의 공간을 넘어 그 자체가 진영 간 경쟁의 장이 된다. 과잉정치의 숙취는 역설적으로 중장기적인 정치적 무관심 층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집단 지성의 도출보다는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쉽게 한다.

정치적 논쟁의 중요성을 결코 평가절하할 수 없지만, 일상생활에 있어서 정치적 감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불균형적으로 커지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가 행복한 사회의 모델로 바라보는 선진 복지국가들에서는 대부분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다. 물론 안정된 정치체제와 높은 투명도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정치 외에도 관심을 가지고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들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시민의식과 정치참여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들이다. 하지만 정치의 과잉과 프레임의 강화가 이성적 집단 지성의 대안을 만들어 낼 토양을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외부에서의 통상 압력은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방선거와 개헌 논의를 비롯한 많은 정치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도전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감정적 대응보다 냉철한 합리성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은 노래가사처럼 아름다워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과잉정치의 거품을 일부 걷어낼 때 오히려 모든 것들이 더 또렷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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