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적재공간ㆍ힘 넘치는 주행…스포츠 광ㆍ자영업자 등 마니아
“실제 용도보다 이미지 소비…큰 차 통제하는 쾌감에 매료”
화물차로 분류돼 세금도 저렴…국산 신제품 대중화 가능성
쉐보레 실버라도. 서군코퍼레이션 제공

경기 평택시에 사는 자동차용품 유통업자 강민구(32)씨는 지난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픽업트럭으로 갈아탔다. 강씨는 “이전에 타던 SUV와 연비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전에 아쉽게 느꼈던 적재공간에 만족감이 크다”고 한다.

픽업트럭은 앞부분은 SUV, 뒷부분은 트럭을 닮은 차량이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해외에선 대중화된 차다. 눈에 띄는 외관 탓에 직장인의 출퇴근용으로는 다소 부담스럽고 화물용으로 쓰기에는 좁다. 디자인도 투박하기 그지 없다. 안을 들여다봐도 대부분 디젤엔진을 얹어 경유를 연료로 쓴다. 한마디로 유행과는 반대다. 그런데도 굳이 이 차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씨를 비롯한 이들은 픽업트럭의 어떤 매력에 끌리는 걸까.

레저ㆍ스포츠 광, 자영업자, 상남자 차

레저ㆍ스포츠 광(狂), 자영업자, ‘상남자’. 국산 모델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해외 픽업트럭을 직수입해 판매해 온 사업자 서영대씨가 말하는 픽업트럭 운전자들의 공통점을 살펴 보면 그 매력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강씨도 평소 캠핑, 스노보드, 사냥 등 레저ㆍ스포츠를 즐긴다. 이런 강씨에게 픽업트럭은 취미 생활에 꼭 필요한 일종의 장비다. 그는 가장 먼저 픽업트럭의 넓은 적재 공간을 장점으로 꼽는다. 그는 “보통 사냥을 나가 멧돼지를 잡아도 차에 이를 실으려면 최소 1.5㎡의 적재공간이 필요한데, 기존에 타던 SUV는 공간이 부족해 불편했다”며 “픽업트럭처럼 적재공간이 넓은 차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주말마다 강원도 등 오지로 취미생활을 즐기러 가는 강씨도 픽업트럭이 힘이 좋아 산길이나 들판 어디든 주행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보통 SUV는 타이어와 휠까지 다 합쳐서 차량 높이가 27~28인치 정도 되는데, 이 정도 높이의 차량으로는 돌이나 바위를 타고 넘기 힘들어요. 하지만 픽업트럭은 이보다 3인치 정도 차고가 더 높아 말 그대로 길이 없는, 오프로드 어디라도 주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죠.”

50~60대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도 픽업트럭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경기 포천시에서 오리구이 전문점을 운영하는 박덕준(61)씨는 픽업트럭이 영업상 넓은 짐칸이 필요한 자신에게 딱 필요한 차라고 말했다. 5년째 픽업트럭을 몰고 있는 그는 “매일 시장에서 많은 양의 식재료를 사서 나르거나 오리를 굽는 장작을 옮길 때 픽업트럭의 적재 공간이 유용하다”며 “특히 픽업트럭은 화물칸이 분리돼 있어 운전석으로 냄새가 스며들지 않아 요긴하다”고 설명했다. 적재 공간이 픽업트럭보다 넓어도 수동 기어가 대부분인 트럭과 달리 픽업트럭은 SUV와 같이 자동 기어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경제적 이점은 덤이다. 픽업트럭은 화물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자동차세가 승용차나 SUV에 비해 훨씬 저렴한데다, 국산은 외산 픽업트럭에 비해 국내 차량 가격도 상대적으로 싸다. 강씨가 구입한 픽업 트럭은 옵션에 따라 2,000만~3,000만원 선이지만, 동급의 외제 브랜드 차량은 4만~5만달러 선(한화 4,200만~5,300만원 선)에 달한다.

‘힘’을 픽업트럭의 매력으로 꼽는 ‘남자’도 적지 않다. 경북 포항시에서 수상레저장비 업체를 운영하는 박장훈(47)씨는 “모터보트가 4톤 정도 되는데 국산 소형 승용차로 끌 수는 있지만 픽업으로 한 번 끌어보면 차를 바꾸지 않고는 못 배긴다”며 “하중을 견디는 힘 자체가 다르고 넉넉한 화물칸이 너무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미군 부대에서 쓰던 중고 군용 픽업트럭을 접한 후부터 지금까지 7대의 픽업트럭을 몰았는데 모두 10년 이상, 10만㎞ 넘게 달린 수입 중고차였지만 연식에 비해 힘만은 쌩쌩했다고 했다. 현재도 박씨는 2년 전 19만㎞를 달린 2004년식 중고 픽업트럭을 구매해 타고 있지만 별다른 고장은 없었다.

주차 어렵고, 친환경 대세 거스르기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심으로 나오면 당장 주차 문제에 직면한다. 픽업 트럭은 외산의 경우 엔진 용량(cc) 보다는 차체 크기를 기준으로 미들(Middle), 빅(Big) 사이즈로 나뉘는데 미들 사이즈 경우도 차량 크기가 승용차나 SUV에 비해 큰 편이어서 넓은 공간이 아니면 주차가 쉽지 않다. 국산 픽업트럭도 차체 크기가 SUV에 가깝지만 승용차보다는 큰 편이다.

물건을 실을 때도 차량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높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용에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서영대 씨는 “여태껏 여성이 픽업 트럭을 구매한 경우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며 “와일드하고 스포티해 보이는 외관과 크기의 차량이다 보니 ‘상남자 차’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전기차ㆍ수소차 등 친환경이 대세인 자동차 시장에서 대부분 디젤엔진으로 경유연료를 사용한다는 점도 픽업 트럭 대중화를 가로막는 한 이유다.

실을 수 있는 픽업의 가능성ㆍ이미지 소비

이런 한계에도 픽업트럭 마니아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레저ㆍ스포츠, 남성성, 프리랜서의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이에 따라 실제 필요와 상관 없이 픽업트럭 운전자는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다. 사회의 다양성이 커질수록 ‘튀는’ 것을 즐기는 마니아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기존에 수입 픽업 트럭을 모는 사람은 주로 고가 SUV 차량을 소유한 고소득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국산 자동차 회사에서도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이전보다 대중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련된 차의 대명사가 해외에서는 스포츠카, 국내에서는 세단이었던 것이 왜건이나 SUV로 옮겨가고, 이제 픽업트럭까지 확장되고 있는 모양새다.

신동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는 “스포츠카를 타는 사람이 실제로 시속 300㎞로 달리려고 하는 게 아니고, 대형 SUV를 타는 사람 대부분이 수심 1m까지 잠수운행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며, 왜건을 타는 사람들이 항상 가족과 외출하는 아니지만 그 가능성 때문에 그런 차를 타는 것”이라며 “픽업트럭의 적재공간에 실제로 뭘 싣는 사람보다는 그냥 실을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런 이미지의 큰 차를 통제할 수 있는다는 쾌감에 사람들이 픽업트럭에 매료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수상 모터 보트도 너끈히 끌 수 있는 힘을 픽업트럭의 매력으로 꼽는 수상레저장비 업체 운영자 박장훈씨. 지난달 27일 자신의 ‘애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포항=김정혜 기자
픽업트럭을 타고 사냥을 나가는 개인 사업자 강민구씨가 1일 경기 평택시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세워둔 픽업트럭 위에 올라타 있다. 차 앞의 자전거는 짐칸에 싣고 이동한다. 강민구씨 제공
자영업자 박덕준씨가 2일 경기 포천시 자신의 점포 앞 주차장에 세워둔 픽업트럭. 오리장작구이 점포를 운영하는 박씨는 식재료를 운전석과 분리된 픽업트럭 짐칸에 싣고 뚜껑을 덮어 냄새 걱정을 덜었다. 박덕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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