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아니스트 백혜선

올해부터 2년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 협주곡 전곡 연주
유학시절 연주하다 망신당한
‘21’번도 30년만에 다시 도전
백혜선은 인터뷰 중 딱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가 들수록 정확한 연주가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윤디리는 젊은 데, 왜 실수로 공연 중단까지 됐냐”면서 “대가들의 전성기는 60~70대”이라고 맞받았다. 연주의 관건은 정확성이 아니라 청중에서 얼마나 정신적인 요소를 주느냐에 달렸고, 때문에 대가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한 연주가 나온다는 주장이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기사보고 알았어요. 요즘에는 그 얘기 밖에 안 하시더라고요.”

1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백혜선(53)은 데뷔 30주년 소감을 묻자 호탕하게 웃음부터 터뜨렸다. 사진 촬영이 있다고 사전에 말했건만 화장 안 한 맨 얼굴로 카메라 앞에 앉은 모습에는 여유가 넘친다. 11일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이날 아침 라디오 방송을 하나 끝내고,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에 있을 인터넷 생중계 공연의 리허설 전 잠깐 짬을 냈다. 독주회를 앞두고 사흘간 오롯이 혼자 있을 시간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 일정을 하루에 몰아넣었다고. 백 씨는 “(피아노 연주가) 정신적인 일이다 보니 일상생활 하면서는 예민한 감각을 놓친다. 기술을 더 연습한다기보다는 연주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어떤 식으로 전개할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199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3위에 입상한 ‘콩쿠르 1세대’인 그는 국내 독보적인 연주자로 자리를 굳힌 2005년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기반을 옮겼다. “연주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도 잠시, 2013년부터 미국 클리브랜드 음악원 교수를 맡았다. 올해 9월부터는 모교인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인터넷 생중계 등 달라진 공연 환경에 대해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싶다”며 농을 던졌다. 그는 “요즘 (데뷔하는) 연주자들이 이렇게 자신 있다는 방증”이라며 “그만큼 정신력이 강한 것 같다. 생방송 연주에 준비돼 있다”고 덧붙였다.

백혜선의 국제 데뷔는 1989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독주회다. 메릴랜드 윌리엄카펠 콩쿠르에서 우승한 특전으로 열린 독주회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아버지가 위암 판정받고 수술 안 한다고 하셔서 두 달을 남긴 상태였어요. 11월 독주회 이듬해 2월쯤 돌아가셨는데, 미국까지 와 주셨으니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었죠. 보수적인 경상도 분이라 ‘여자가 무슨 유학이냐’고 반대하셨던 분이었는데, 연주회 보고 ‘나는 네가 피아노하고 결혼했다고 생각하련다’ 인정하신 자리였어요.”

피아니스트 백혜선. 신상순 선임기자

엄연히 데뷔 30주년은 내년이지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라는 묵직한 주제를 잡는 바람에 백혜선은 올해부터 “2년에 걸쳐” 기념 연주회를 연다. “클래식 연주자에게 셰익스피어 희곡 같은” 베토벤 소나타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고 싶다고. 그는 “베토벤을 연주하면 피아니스트들은 보통 발가벗겨진다.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작곡가”라고 말했다. 극도의 좌절감과 희망, 환희를 한꺼번에 갖고 있는데다 밀도 높은 구조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려면 연륜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고전과 현대를 이어 주는 작곡가죠. 고전파가 잘 짜인 구도로 감정을 절제했다면 낭만파는 그에 대한 반발로 감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잖아요. 베토벤은 그 문을 연 사람이라 연주 잘하기가 쉽지 않아요.”

올해는 네 차례에 걸쳐 소나타 일부와 협주곡 전곡을 선보인다. 16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첫 연주회 ‘백혜선의 베토벤’에서는 ‘시작을 회상하며’를 주제로 소나타 20번과 19번, 14번, 5번, 21번을 차례로 들려준다. ‘소나티네’로 불리는 피아노 연습곡 20번과 19번은 백혜선이 처음 연주한 베토벤 곡이다. 19번은 초등학교 때 “베토벤 소나타를 접한 마음을 상징하는 곡”이다. 피아노 전공자들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꼭 쳐 보는” 월광(14번)도 물론 포함했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연주할 21번 ‘발트슈타인’이다. 유학시절 공개 레슨에서 ‘대망신’당한 후 한 번도 공연에서 연주한 적이 없는 곡이다. 백혜선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으로 이번에 처음 선보인다”면서 “청중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