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 된 특혜성 채용

사외이사 등 추천은 서류 합격
임직원 자녀에 혜택 ‘음서제’
특정대학 출신 우대도 일상화
인맥 중요시하는 금융 특성에
수백명 선발 과정 보충수단 인식
“신입 공채시엔 추천제 없애고
고위직 관여할 수 없게 해야”
게티이미지뱅크

# 광주은행은 임직원 자녀에게 필기시험 때 15%의 가산점을 주고 있다. 2015년 채용 당시엔 인사 담당 부행장보가 본인 자녀의 2차 면접 때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이를 비리로 보지 않았다. 공정하진 않지만 회사 내규에 명시돼 공개 운영돼 왔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광주은행에 제도개선만 요구했다.

# 하나은행은 채용 시 홈페이지 공고 외 행원들만 볼 수 있는 사내 게시판에 ‘우수인재 추천을 장려한다’는 글을 별도로 올려 왔다. 이 글엔 ‘글로벌 인재, 입점 및 주요거래 대학 우대‘란 요건도 붙였다. 2016년 1만여명의 응시자 가운데 이런 내부 추천 55명은 모두 서류 심사를 통과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연루된 사건도 바로 이 ‘우수인재 추천 전형’이다.

최 금감원장이 낙마하며 금융권 내부에 만연한 ‘그들만의 추천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최 원장 조차 “추천은 했지만 부정은 없었다”고 아무 문제 의식 없이 강조할 정도로 추천제는 금융권의 관행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수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더 이상 ‘불공정’에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채용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실태 어느 정도인가

그 동안 금융권에선 공채란 이름을 내걸면서도 암암리에 내부 자체 추천 시스템이 운영돼 왔다. 가장 흔한 방법이 중요인물(VIP) 명단 관리다. 13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2016년 공채에서 계열사 전 사장이나 사외이사의 추천을 받은 55명을 VIP 명단에 넣어 전원 서류전형 합격시켰다. KB국민은행은 2015년 공채에서 20명을 1차 합격자 명단에 올렸다. 지난달 초 불구속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과 인사부서 간부도 2015년부터 3년간 청탁 명부를 통해 공직자와 고액 자산가의 자녀 등을 뽑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채용 시 임직원 자녀를 우대하는 일종의 ‘음서제’도 논란거리다. 금감원은 지난 1월 국내 은행을 상대로 한 채용비리 검사에서 2개 은행이 내규 등을 통해 임직원 자녀 등에 채용 혜택을 주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음서제’는 광주은행 등 주로 지방은행에 많지만 일부 시중은행에서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은 비리 의혹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부모가 임원으로 재직 시 자녀가 같은 계열사로 들어온 경우가 많아 눈총을 받고 있다.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과 서진원 전 행장의 자녀 등이 신한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모두 블라인드 채용 절차를 통해 들어왔고 인재라서 뽑힌 것뿐이지 임직원 자녀 우대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국내외 특정대학 졸업자나 은행이 입점해 있는 대학 출신자 등을 우대하는 경우도 보편화돼 있다.

왜 만연했나…지금 갑자기 터져 나온 이유는

공채에도 불구하고 추천제 같은 비공식 통로가 존재해온 데엔 금융업의 특수성이 한몫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금융회사는 정부가 면허를 내줘야 운영이 가능하고, 정권마다 중시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산업이라 이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인맥을 쌓는 게 중요하다”며 “채용 과정에서 권력층과 고위직 부탁을 들어주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에 수백명의 행원을 뽑는 과정에서 인재를 발탁하기 위한 보충 수단으로 생각한 측면도 없잖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서류전형은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로 변별력을 갖기 힘들다“며 “이런 때 추천 받은 인재들을 우선 통과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관행을 핑계로 아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안이한 사고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로 감독 당국조차 금융권 채용비리를 다루면서 “인재 추천과 특혜 채용은 분리해 봐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금감원 신입직원 채용 비리에 연루되자 “지인 아들의 합격 여부를 문의만 했다”고 해명했다. 김 회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당시 채용을 담당한 금감원 인사 담당자는 구속됐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사법처리와 상관없이 추천제의 핵심은 사실상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어떻게 풀어야

신입직원 공채에서 추천제를 없애는 것부터 우선돼야 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경력직을 뽑을 때는 그 동안 한 일을 토대로 검증하는 만큼 추천이 의미가 있지만 신입은 가능성 등 자질을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사 고위직이 인사에 관여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윤 교수는 “임원진이 해야 할 일은 채용제도의 적절성 등을 감시하는 선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단순 추천이어도 직위에 따라 채용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관련 이번 기회를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는 은행별 사례와 금감원이 지적한 사안 등을 토대로 채용절차 관련 모범 규준을 마련 중이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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