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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진보의 침묵

입력
2018.03.13 15:4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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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는 신뢰의 결여가 그 뿌리다. 북한이 한사코 핵을 가지려는 것도, 미국이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우선 강조하는 것도, 서로를 못 믿기 때문이다. 북미관계가 급진전하는 양상이지만 언제 불신의 암초에 걸려 좌초할지 모른다. 3년 전 메르스 사태 때 우리는 불신비용을 톡톡히 치렀다. 국민은 정부를 믿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온갖 괴담과 돌출행동이 난무했다. 매년 꼴찌 수준인 국가 신뢰지수가 발표될 때마다 엄청난 사회ㆍ경제적 비용을 지적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 안희정의 팬클럽인 팀스틸버드가 안 캠프의 비민주성을 낱낱이 고발했다. “노래방에서 끌어안거나 노래와 춤을 강요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선배에게 뺨을 맞고도 술에 취해 그랬을 것이라고 넘어갔다” “만연한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은 ‘구조적 환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면 묵살 당하는 분위기에서 소통은 불가능했다” 성폭력으로 안희정의 30년 정치인생은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성폭력을 낳은 구조적, 비민주적 적폐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란 것이다.

▦ 진보인사들의 성폭력 의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노래방 추문으로 서울시장 출마 포기와 의원직 사퇴를 밝힌 민주당 민병두 의원, 성폭력 의혹공방이 한창인 정봉주 전 의원, 경우는 다르지만 불륜 여부로 전처와 진흙탕 싸움을 하는 박수현 충남지사 예비후보… 고은, 이윤택에서 시작돼 지금도 매일 같이 거명되는 진보계 인사들까지 치자면 일일이 세기도 어렵다. 이 정도면 한 두 명의 일탈 수준이 아니다.

▦ 민주당은 성폭력은 특정 정파가 아닌 가부장적 권력구조, 양성평등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보수에도 성폭력은 만연해 있을 것이라며 물타기를 한다. 민주당 말대로 보수의 성폭력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추문이 나의 추문을 합리화하는 기준일 수는 없다. 심지어 진보 쪽 여성은 주체화해 있고, 깨어 있어서 미투 고발이 활발하다는 논리에서는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다면 보수 쪽 여성은 여전히 시대착오적이고 젠더 자각이 없어서 입을 닫고 있다는 얘기인가. 남성우위의 권력구조 문제라는 방패 뒤로 숨을 게 아니라 성폭력을 야기하는 구조적 위선은 없는지 먼저 돌아보는 게 진보의 바른 자세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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