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금감원장 전격 사의

“불법행위 안했다” 항변했지만
‘공정사회’ 文 정부에 부담 판단
“하나금융과 갈등이 원인” 시각도
금감원 “채용비리 검사 예정대로”
금융권 CEO 연쇄낙마 부를 수도

최흥식(67)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사의를 표명한 것은 금융감독기구 수장의 채용 비리 연루 자체만으로도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 원장의 직접적 사임 배경은 최근 불거진 채용비리 의혹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 원장은 5년 전인 2013년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있던 시절 대학 동기로부터 아들이 하나은행에 지원했다는 전화를 받은 뒤 은행 인사담당 임원에게 이름을 건넸다. 이 과정에서 부정한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는 게 최 원장의 입장이다. 그는 이날 사퇴 직후 입장문을 통해서도 “불법적인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금융당국 수장으로 이러한 의혹에 휩싸인 사실은 어떤 해명에도 국민들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사실 관계를 떠나 국민 입장에선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울분을 토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이 자리를 지킬 경우 그 동안 채용비리 수사를 진두지휘해 온 금감원의 명예와 권위도 손상받게 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국내 11개 은행에 대한 검사를 벌인 결과 부정 청탁에 따른 특혜 채용 9건과 특정 대학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한 면접점수 조작 7건, 채용 전형의 불공정한 운영 6건 등 채용비리 정황 22건을 적발, 검찰에 넘겼다. 금감원은 보험과 증권 등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채용비리 현장 점검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감독당국 수장이 채용비리에 연루된 의심을 받는다는 것은 조직의 도덕성과 조사의 정당성을 흔드는 일이다.

최 원장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스스로 사표를 내긴 했지만 이번 일은 여러모로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 민간 출신 첫 금감원장인 최 원장은 1999년 금융감독원 출범 이후 가장 짧은 임기를 지낸 원장이 됐다. 금감원장 임기는 3년이다.

더구나 감독 당국 수장이 민간 금융지주 회장과의 충돌 과정에서 낙마한 것은 전례가 없다. 실제로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 원장은 하나금융의 차기 회장 선출을 앞두고 지주사 최고경영자(CEO) 셀프 연임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구성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해 왔다. 이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한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지난 1월에는 하나금융 회추위에 차기 회장 후보 선임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구두와 서면으로 요청했지만, 하나금융 회추위가 이를 무시한 채 김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갑자기 하나은행에서 2013년 최 원장 관련 채용비리 자료가 튀어나온 것은 석연찮은 대목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도 “애초 금감원이 2015~2017년 3개년 공채 과정을 점검할 때 하나은행은 모든 자료가 폐기됐다고 했는데 갑자기 최 원장과 관련된 2013년 자료를 찾았다고 하니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의 기류는 상당히 험악하다. 금감원은 최 원장 사임을 계기로 금융권을 향해 고강도 채용비리 점검을 예고했다. 금감원은 남은 채용비리 검사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꾸린 특별검사단을 통해 최 원장 채용비리 관련 조사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첫 대상은 하나금융이 될 걸로 보인다. 최 원장이 채용 추천을 한 당시 하나금융 회장은 김정태 현 회장인 데다, 내부적으로 ‘임원 추천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 원장에게 들이댄 잣대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특정인을 추천한 하나금융 고위 임원들한테도 파장이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선 최 원장의 사임이 전 금융권 CEO의 연쇄 낙마를 부르는 신호탄이 될 거란 분석도 제기된다. 다른 금융사들도 암암리에 내부 추천제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를 넘어 선 금감원과 하나금융 간 갈등에 대한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최 원장이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 문제로 물러난 만큼 당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었던 김 회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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