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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금융 지배구조] 사외이사, 親정부 인사 포진...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혁 또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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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금융 지배구조] 사외이사, 親정부 인사 포진...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혁 또 표류

입력
2018.03.12 03: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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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셀프 연임” 당국의 비판에

사외이사들 대거 물갈이 바람

4대 금융지주 58%가 새로 교체

“CEO로부터 독립” 명분으로

정치성향 짙은 비전문가들 발탁

주주대표성 확보하는 정책 필요

오는 23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근 하나금융그룹이 사외이사 후보로 낸 박시환 전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2기 동기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대리인이었다. 신한금융지주의 사외이사 후보인 박병대 전 대법관 역시 문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KB금융지주가 새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정구환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을 지냈다. 함께 후보로 추천된 선우석호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고교 동문이다.

금융지주들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부와 ‘코드’가 맞는 사외이사들로 이사회 진용을 새로 갖추고 있다. 금융 당국이 금융권의 ‘셀프 연임’(회장이 사외이사를 뽑고 그 사외이사가 회장 연임에 찬성하는 현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금융회사들이 사외이사 물갈이에 나선 것인데, 이 과정이 되레 ‘신관치’를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한편에선 이사회 내 각종 위원회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무조건 빼는 기류가 형성된 탓에 지배구조가 탄탄한 회사조차 정부 눈치보기를 해야 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CEO나 사외이사 보다 주주들의 권익과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하순 열리는 주총에서 KBㆍ신한ㆍ하나ㆍ농협 등 4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28명 가운데 24명의 임기가 끝나고 이 가운데 14명(58.3%)의 얼굴이 새로 바뀐다. 하나금융은 5명을, KB금융은 3명을, 신한금융은 3명을, 농협금융은 3명을 각각 교체 선임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자진사퇴 등 특별한 사안이 없으면 최대 6년까지 연임하는 것이 당연시됐지만 올해는 금융당국발 지배구조 개선 바람이 사외이사 추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셀프연임’ 등 경영권 승계 과정을 비판해 왔다. 최근에도 최 원장은 “금융지주 지배구조 운영 실태 점검 결과 등을 바탕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압박에 금융지주들은 CEO의 입김에서 벗어난 사외이사들을 대거 기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문제는 친정부 인사들이 속속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데에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지배구조는 주주 권리 차원에서 살펴야 하는데 CEO로부터 독립적인 인물을 뽑겠다는 명목으로 정치적 성향이 짙은 사외이사들을 발탁하면 이 또한 주주 이익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외이사들의 전문성도 논란거리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우리나라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현업 경험이 없는 교수나 변호사 등으로 채워져 있어 경영에 대해 잘 모르고 인수합병(M&A) 등 회사 미래가 걸린 주요 안건에도 자신 있게 반대하기 힘들다”며 “사외이사를 가장 먼저 도입한 미국은 사외이사의 80%가 다른 회사 경영진으로 꾸려져 있다”고 강조했다.

사외이사들의 힘이 막강해지는 것이 곧 지배구조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2014년 ‘KB사태’는 사외이사가 장악한 이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내분을 겪을 때 사외이사들은 자신들이 뽑은 임 전 회장 편에 서서 사태를 4개월간 방치하다 금융당국이 회장 해임을 권고하자 뒤늦게 해임안을 의결했다. 사내이사가 임 전 회장 1명밖에 없었던 탓에 경영공백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을 겪은 지 불과 4년여 만에 이번엔 반대로 사외이사 권력은 키우고 CEO 권력은 축소하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인 게 사외이사 및 차기 회장 후보 선출 논의에서 현직 회장을 배제하는 움직임이다. 국내 7개 금융지주 가운데 KB금융과 하나금융, DGB금융, JB금융 등 4곳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현 회장이 차기 회장 선출 및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NH농협금융과 BNK금융은 이미 2016년 11월과 2017년 9월 이러한 제도를 도입했다. 금융권에서는 나머지 한 곳인 신한금융 역시 이런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달 21일 신한금융지주 정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은 조용병 회장의 사외이사추천위원회 배제 여부를 두고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상장사 중 유일하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지배구조 부문에서 최고점(S등급)을 받았지만 CEO의 권력을 줄이는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어 고민”이라며 “주총 이후 재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특정 주인이 없는 금융회사가 정권에 따라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주주대표성을 확보하는 제도가 정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점 주주들을 대표하는 사외이사들로 이사회를 꾸려 주주 이익, 회사 수익이 최우선이 되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며 “우리은행의 5개 과점 주주 지배구조가 지난해 행장 선임 과정에서 외부로부터의 입김을 막는데 역할을 한 것이 좋은 예”라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의 힘이 막강해진 만큼 이들을 감시하고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CEO의 권력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반대로 사외이사의 권한이 막강해져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선진국의 경우 이사회 결정에 대해 사후 감사를 철저히 해 잘못된 부분은 끝까지 책임지게 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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