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일상회 '잇템'으로 목욕 바구니를 꾸려봤다

※편집자주: ‘목욕재개(再開)’는 '목욕을 다시 이야기한다’는 의미로, '초보 목욕커'의 눈으로 바라본 목욕 세계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대중목욕탕, 찜질방, 온천 등을 망라한 한국의 목욕 문화를 탐구하고, 습관적으로 씻는 목욕이 아닌 '더 잘 씻는 법'을 고민합니다.
때수건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제일상회'의 선반. 이혜미 기자

"나가이(긴 것)? 여기 아리마스(있어요). 꽈배기는 나이데스(없어요)."

지난 6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목욕용품 잡화점 '제일상회' 사장 박모(72)씨는 일본인 손님과 정체불명의 언어를 주고받았다. 노랑, 초록, 빨강 등 형형색색 때수건이 가게 입구를 장식하고 있어서일까. 일본인 여성들은 때수건을 보고 "카와이(귀엽다)"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온 손님은 가게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웨어 아유 프롬? 응. 이거 굿" 새하얗게 머리카락이 센 베테랑 상인의 생존 외국어에 '때 미는 문화'가 낯선 외국인 관광객도 흔쾌히 지갑을 열었다.

25년째 박씨가 4평의 작은 잡화점을 지켜온 동안, 남대문시장에서 목욕용품 전문점은 이제 두 군데 남짓 남았다. 처음에는 '이태리타월'로 불리는 때수건 두 종류로 시작했다. 목욕 문화가 발달하면서, 좁은 공간은 때 비누, 얼굴 세안기, 발 각질 제거 도구 등으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박씨는 매일 도매 거래처의 영수증을 계산기 없이 셈하고, 만국에서 몰려드는 외국인을 상대한다. 이 때문인지 박씨는 7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빛이 또렷하고, 목소리엔 힘이 있게 느껴졌다.

25년째 박씨는 4평 남짓 상점을 지키고 있다. 이혜미 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늘면서, 자연스레 한국의 '때 문화'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시선에서는 흡사 '피부 고문'과도 같은 광경에 놀란 것은 찰나일 뿐, 명동의 사우나에서 목욕을 체험하고 남대문시장에서 이태리타월을 사서 돌아가는 것이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다. 박씨는 1990년대를 '제일상회'의 호황기로 추억한다. 동네 목욕탕이 점점 문을 닫는 추세인 데다, 외국에서도 때수건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

800원짜리 때수건 한 장 팔아 봤자 남는 건 별로 없지만, 목욕탕에 비치할 물건을 도매로 사는 손님에겐 따뜻한 어묵도 사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커피값도 내어준다. 박씨는 "돈 보고 때수건 장사했으면 지금까지 못 왔다"며 "하나를 팔아도 내가 써보고 좋은 것을 추천하다 보니 어느새 25년이 흐른 것"이라고 말했다. '안목 하나는 자신 있다'는 박씨가 추천하는 대로 '남대문시장'표 목욕 바구니를 꾸려봤다.

때 비누, 목욕 방석, 목욕 모자 등 목욕용품으로 가득 찬 제일상회의 선반. 이혜미 기자
박씨의 추천으로 꾸려본 남대문 시장표 목욕 가방. 이혜미 기자
아랫부분이 메시 소재로 돼 통풍이 잘되는 목욕 가방. 이혜미 기자
1. 아랫부분이 뚫린 목욕 가방

플라스틱 목욕 바구니는 '나 목욕 간다'는 것을 동네방네 광고하는 것 같아 꺼려진다. 그렇다고 물기 머금은 목욕용품을 가방에 담자니 금세 안이 축축해질 것만 같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아랫부분을 통풍이 잘되는 메시 원단으로 처리한 목욕 가방이 인기다. 명품 브랜드를 살짝 모사한 'SJ표(시장표)' 무늬는 애교다.

2. 목욕 모자

몸이 찌뿌드드하거나 날씨가 스산할 때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고행을 자처하고 싶어진다. 가장 간편한 대안이 '대중목욕탕'일진대, 수면에 둥둥 떠 있는 타인의 머리카락을 보면 탕의 위생이 염려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탕에 들어가기 전 샤워를 하는 것은 물론,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질까 '목욕 모자'를 쓰고 탕에 들어가는 것이 '탕욕 질서'로 자리 잡았다.

방수가 되는 목욕 의자 방석. 플라스틱 의자 위에 두기도 하고, 사우나에 들어갈 때 들고 가기도 한다. 이혜미 기자
3. 목욕 의자 방석

따뜻한 물을 맘껏 쓸 수 없던 시절, 온 가족이 총출동한 대중목욕탕에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세면 대야와 플라스틱 의자를 비누로 박박 씻는 것이었다. 목욕탕은 플라스틱 덩어리도 비누칠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마음 넉넉한 공간이었다.

목욕 의자에 비누칠도 모자라 '나만의 목욕 의자 방석'이 등장했다. 의자에 놓을 수도 있고, 사우나에서도 간편하게 깔고 앉을 수 있다. 삼단으로 접혀 목욕 가방에 넣어 간편하게 휴대할 수도 있다. 대중목욕탕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탐낸다는 것이 바로 이 방석이다. '내 엉덩이는 소중하니까.'

최근 여탕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실리콘 부항. 이혜미 기자
장갑처럼 끼고 문지를 수 있는 마사지 도구. 이혜미 기자
4. 실리콘 부항, 마사지 도구

실리콘 부항의 꼭지 부분을 꾹 누르면 안의 공기가 빠져나가 피부에 찰싹 달라붙는다. 의학적으로 입증되진 않았지만, 뻐근하고 뭉친 곳에 붙이면 혈액순환이 잘 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여탕에서 인기다. 어깨의 승모근에 부항을 붙이고 사우나를 들락날락하거나, 마사지 도구로 전신을 문지르는 '목욕 고수'를 쉽게 볼 수 있다.

발바닥의 각질을 제거하는 화산석. 이혜미 기자
얼굴 세안용 실리콘 브러시. 이혜미 기자
등을 간편하게 밀 수 있는 막대형 때수건. 이혜미 기자
5. 각종 각질 제거 도구

모든 '때'는 피부에서 떨어져 나간 각질과 미세먼지 등의 혼합물이다. 25년 전엔 네모반듯한 모양의 이태리타월이 목욕 시장을 독점했지만, 천편일률적인 때수건은 여러 부위를 구석구석 밀기엔 부적합했다. 이에 '손가락 장갑' 형태뿐만 아니라 등을 미는 막대 때수건이 등장해 더욱 효율적으로 때를 밀 수 있게 됐다. 돌처럼 굳은 발바닥엔 '화산석'으로 만든 각질 제거기, 부드러운 얼굴 피부엔 실리콘으로 만든 브러시 등 부위에 따라 각질을 벗기는 도구도 천차만별이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