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의 '아픈 봄날'] 보육원 종사자들의 소회

#상대적으로 의지 약한 아이들
가족 기대 부응하려는 생각 적고
“내가 그렇지 뭐”라며 재도전 포기
퇴소 후에 방황하는 아이들 상당
보육원 근처서 관리할 대책 절실
#진로 의사 존중하지만…
과거엔 아이들 대부분 고교 졸업
지금은 대학 진학률 58%로 늘어
등록금ㆍ생활비 등 마련 부담 커
5명 중 4명은 학업 중도에 포기
#지자체별로 다른 보육원 지원
서울은 아동 용돈 등 지원 있지만
지방은 같은 시설에도 차별 느껴
어린이집 비용 정부 지원도 절실
지난 8일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직원들이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아이들은 19세가 돼서 보육원을 나갈 때까지 보육원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자란다. 홍인기 기자

#1. 전문대를 졸업하고 의류브랜드 점장이 된 한 남성은 결혼 후 자신이 자랐던 서울시내 보육원을 장인, 장모와 함께 찾아왔다. 그를 새로운 가족으로 품은 이들은 “사위가 자란 곳에 후원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2. 충남의 모 대학 컴퓨터공학과에 다니는 한 대학생은 교수가 되는 게 꿈이다. 전 과목 A플러스 학점을 받았고, 대학원도 진학할 예정이다. 다른 학생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그는 보육원 출신이다.

평범하지만 이처럼 ‘작은 신화’들이 가장 필요한 곳이 보육원일지 모른다. 지난해 말 제주에서 보육원 출신으로 서울대에 합격해 언론에 소개된 김형효 군의 사연도 이러한 신화의 하나이다. “우리 아들 좋은 데 취직했어” “우리 딸 공부 잘 해”라고 하는 일반 가정의 ‘자랑’은 보육원에도 있다. 하지만 분명 드물다. ‘금수저들의 시대’에 부모없이 자라난 아이들이 평균적인 삶을 누리도록 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성공으로도 볼 수 있다. 보육원 종사자들을 통해 보육원의 ‘작은 신화’들이 풍성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들어봤다.

서울 용산구 혜심원의 방애영 부원장은 아이들이 퇴소한 후에도 계속 돌볼 수 있는 지원책을 원했다. “우리 애들인데, 우리가 가장 잘 아는데…, 주변에 전세방이라도 구해서 밥 없으면 불러 먹이고, 잘못하면 야단도 치고 그러고 싶죠.” 용산복지재단에서 퇴소자의 신청을 받아 1인당 1,000만원씩 전세자금으로 보태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차라리 그 돈을 보육원이 관리하도록 해주면 근처에 퇴소한 아이들이 살 곳을 구해 계속 돌보고 싶다는 얘기이다. 이유가 있다. 보육원에 있을 당시 정규직으로 조기 취업해 직장을 잘 다니다가도 퇴소 후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리고는 아르바이트, 일용직을 전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보육원을 나서는 장민주(가명)양. 19살이 되면서 퇴소 후 자립생활관으로 옮겼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퇴소하는 아이들이 주로 입주하는 자립생활관엔 별도 관리자가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키운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고, 아이들끼리 모여 생활하는 그룹홈은 야단을 치고 바로잡아 줄 어른이 없다. 보육원이 퇴소 후 5년간은 아이들의 상황을 챙기고 관리하도록 돼 있으나, 함께 있을 때와 같을 수 없다.

지난 1일 강지나(가명)양이 보육원에서 퇴소한 후 머물고 있는 서울의 한 자립생활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진희 기자

보육원 종사자들은 보육원 아이들의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부모님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지 못해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려 할 때 강해지는 의지력이 비교적 부족하다는 진단이다. 부모는 나를 버렸고, 여기서 나를 돌보는 사람들은 돈 받고 일하는 분들(사회복지사)이라는 생각. 기본적으로 어른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다시 하면 될 것도 “내가 그렇지 뭐”라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또 좋아했던 보육원 종사자들이 그만두고 자신을 떠나는 경험을 하면서, “역시 난 아무도 없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신뢰를 형성한 어른이 있고, 지속적일 때 아이들이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소현 서울 청운보육원 사무국장은 “아이들에게 마음 아프지만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도 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10년, 20년 더 억울하게 살 수 있다고 야단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부청하 서울 상록보육원 원장은 가정에서 학대받다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는 “부모 없이 보육원으로 바로 온 아이들은 생활을 아주 잘한다”라며 “하지만 (부모에게) 학대를 받다 온 아이들은 상처가 심해 심리치료를 한 후 사회로 내보내야 하는데, 1회 외부 치료를 받는데 5만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심한 경우 선생님에게 욕설하거나 친구를 폭행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전문적으로 상담할 인력과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보육원 아이 대다수가 고교 졸업만으로 학업을 마쳤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진로 의사를 존중해 상당수 대학에 보낸다. 10여 년 전 대학을 거의 보내지 않던 시기, 서울의 한 보육원이 퇴소한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해봤더니 주유소 아르바이트, 중국집 배달, 분식집 서빙 등을 전전하고 있었다. 보육원 관계자는 “고등학교까지 잘 교육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사립고에 입학시키기도 하고, 후원금을 쪼개 학원에도 보낸다. 직업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일부 지방자치단체 지원 등을 받아 학원을 간다.

2016년 조사에 따르면 보육원(아동 양육시설) 퇴소자가 5년 이내 대학 진학을 경험한 비율은 57.7%. 전체 대학진학률 69.8%(2016년 기준)와 크게 차이 나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여러 여건상 대학을 마치지 못한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 부원장은 “대학에 간 아이 5명 중 4명은 그만둔다”라며 “국가장학금부터 민간장학금 지원까지 대부분 학점 제한이 있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아이들이 (학점이 모자라) 장학금을 못 받는 경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뚜렷한 목표 없이 진학했다가 후회하고 그만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보육원 종사자들은 마음껏 입히고 먹이고 교육시킬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할 때가 많다. 부 원장은 “어린이집에 보내는 아이들이 30명쯤 되는데, 특별활동비는 정부 지원이 안돼서 큰 부담이 된다”며 “꼭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경 경남 남해 자애원 자립지원 전담요원은 “같은 시설 아동임에도 지자체별로 지원이 다르다는데 차별을 느낀다”며 “서울은 아동 용돈 등 지원되는 비용이 많다고 들었는데 경남은 이런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운영비ㆍ생계비는 늘 부족하다.

보육원 원장을 ‘큰 아빠’나 ‘큰 엄마’라 부르고 사회복지사를 ‘엄마’ ‘이모’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자라 사회인이 되는 세월만큼, 당국과 보육원 종사자들의 생각도 달라진 점이 많다. 과거에는 영아만 모아 놓은 보육원이 따로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에게 환경이 바뀌는 것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처음부터 같은 보육원에서 쭉 자라도록 한다. 한 보육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입학할 때 전부 같은 가방과 신발을 사줘 아이들이 속상해했다”라며 “이제 가능한 개성을 중시해 이런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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