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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가짜뉴스를 믿는 이유… 사람들은 '안다'는 착각 속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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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가짜뉴스를 믿는 이유… 사람들은 '안다'는 착각 속에 안도한다

입력
2018.03.0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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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

사실은 대부분 잘 몰라

인터넷은 되레 상황 악화시켜

검색 몇 번 하고는 “다 안다”

개인의 지식 보잘것 없음 인정을

지난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무효를 주장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류효진기자
지난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무효를 주장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류효진기자

“집단 구성원들이 사실을 잘 모르는 채로 입장을 공유할 때는 구성원들끼리 이해한다는 느낌을 서로 강화한다. 그래서 확실한 근거가 되는 전문 지식이 없는데도 모두가 정당하고 명백한 사명을 가졌다고 여기는 것이다.”

정치적 이슈에 대한 부모 세대와의 갈등은 대개 여기서 시작된다. 주사파가 청와대를 장악했다는 둥, 종북 좌파 정권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둥 카톡을 타고 돌아다니는 가짜 뉴스들을 보면 이런 걸 대체 누가 믿나 싶지만, 열렬하게 믿는 이들이 있다.

이런 움직임을 막겠다며 팩트체킹을 해도 별 소용없다. ‘가짜 뉴스의 심리학’에서 중요한 건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가짜 뉴스를 공유함으로써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안도감을 느낀다는 데 있다.

그래도 굳이 설득해보겠다며 이런 저런 사실을 들이대 마침내 상대방이 ‘내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겠다’는 반응이 나왔을 땐 어떻게 될까. 탄식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지식을 향해 나아갈까.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찾으려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착각을 깨뜨리는 순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의외로 “사람들이 착각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네가 뭘 알아’, ‘네가 그 시절을 살아봤어’라는 말은 착각 속에서 편안하게 계속 살겠다는 선언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착각은 모든 쾌락 중 으뜸”이니까.

정치인들은 이 착각을 반기며 활용한다.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이란 우리가 바라는 최선의 결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현실적 조건 속에서 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여야 한다. 그러나 논쟁은 그리 흘러가지 않는다. 일단 호루라기부터 분다. ‘보수냐, 진보냐’ ‘종북좌파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논리가 작동한다. ‘네 편이냐 내 편이냐, 예 아니오로 답하시오’다. 구체적 쟁점은 사라지고 남는 건 패싸움이다. 신문 1면의 시꺼먼 고딕체 제목은 패싸움을 유도하는 호루라기 역할을 종종 한다.

이런 공격법이 먹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중요한 정치적 논점을 흐릴 수 있다. 둘째 정책의 결과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찌될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 그리고 ‘저주의 굿판’은 그리 멀지 않다. 북핵, 경제, 복지, ‘#미투(Me Too)’ 등 여러 이슈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란 겉으로 보기엔 말들의 성찬이지만, 그 말을 조금만 더 파고들면 “놀랍도록 피상적”이다.

지식의 착각

스트븐 슬로먼, 필립 페른백 지음ㆍ문희경 옮김

세종서적 발행ㆍ374쪽ㆍ1만8,000원

이는 정치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백신 접종 등 현대 의학을 거부하고 자연 치료로 병을 낫게 하겠다는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키우기)’류의 운동, 그저 우리 민족이 위대하기만 했다는 유사역사 같은 종류의 반과학적 세계관들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자신감 넘치게 오답을 외치는 걸 넘어, 이제껏 속고 살았던 가련한 너희들을 구해내겠다는 사명감에 활활 불타오르기도 한다.

인간들은 대체 왜 이 모양일까. 탄식할 필요는 없다. 인지과학자인 두 저자 스티븐 슬로먼과 필립 페른백은 ‘지식의 착각’을 통해 인간이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설명해준다.

인간의 지식은 왜 이리 얕은가. 진화의 산물인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정보를 대충 빨리 처리하도록 짜여 있다. 숲이 흔들릴 땐 이유를 탐구하기보다 일단 숨어야 한다. 호랑이일지 그냥 바람일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생존확률이 높다. 매번 그럴 수 없으니 경계병을 세운다. 경계병이 주시하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숲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인지 노동의 분배’다. 모든 일들이 이렇게 진행됐다. 뜻을 모으고 방향을 설정하고 역할을 나눴다. 저자들은 이렇게 형성된 것을 ‘지식의 공동체’라 부른다. 그 덕에 우리는 스마트폰의 원리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으면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전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부작용도 있다. “우리는 남의 머릿속에 든 지식을 활용할 수 있으면 자신의 지식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을 나누는 공동체에 살기 때문에 개인은 지식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지 남들 머릿속에 있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인터넷은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검색 몇 번해 보곤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은 이러하니 이런 진단과 처방을 내리라고 지시하는 세상, 사료비판이나 학계 내 논쟁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번역된 중국 역사서 몇 권 뒤져보고는 지금 강단 사학자들은 모두 다 친일 사학자라고 용감하게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두 저자의 책 ‘지식의 착각’은 소크라테스 철학의 인지과학 버전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모른다는 걸 아는 게 더 현명하다 했던 소크라테스 말이다. 책 전반부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는 모른다’라는 말을 실토하게끔 유도했던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인지과학적 실험으로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중ㆍ후반부로 가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더 현명해질까라는 문제를 다룬다.

포인트는 ‘개개인의 무지’ ‘지식의 공동체’다. 개개인의 지식이란 보잘것없으며, 우리 모두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인지과학적 지침이 아이들 교육, 조직 내 성과평가나 리더십 등의 문제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조언해준다. 원제는 ‘The Knowledge Illusion’. “내가 안다”라고 말하는 건 ‘착각’ 정도가 아니라 ‘망상’이라는 얘기다. 인지과학이란 프리즘을 통과한 인간 본성이 어떤 다양한 색깔을 뿜어낼 수 있을지 보여주는 매력적인 책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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