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말은 한때 널리 쓰이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라질 듯했던 말이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유행하기도 한다. 요즘 널리 쓰이는 ‘시크(chic)’가 그렇다. 이 말은 1920-30년대에 꽤 널리 쓰였지만 이후엔 패션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였다. 1994년에 여성 패션지 ‘쉬크(chic)’가 창간될 때만 해도 대중들은 이 말을 낯설어했다.

그런데 1930년대에 ‘쉬크’는 ‘모던’과 더불어 유행의 첨단을 걷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당시 신문에 게재된 ‘신어해설’을 보면 ‘쉬크’는 ‘모던’과는 다른 경향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불어의 Chic인데 요사이 항용 쓰는 데는 여기에 영어의 Girl, Boy를 부치어 Chic girl이니 Chic boy니 한다. 쉬-크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멋쟁이 하이칼라란 뜻이다. 그러나 그대로 외형만 멋쟁이인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잘 이해하고 유행의 첨단을 걷는 데 아모 빈틈없는 짜장 근대인에게 적절한 형용사이다. ‘모보, 모껄’이 엉터리없이 내면이 빈약함에 반하여 쉬-크뽀이, 쉬-크걸은 휼륭한 신사숙녀이라 하는 것이 쉬-크 찬미자의 말이다.”(동아일보, 1931.4.13.)

위 기사를 보면 진정한 멋쟁이가 되고 싶었던 근대인들이 ‘쉬크’란 말의 유행을 이끈 듯하다. 생각 없이 멋만 내는 사람들까지 ‘모던 보이, 모던 걸’로 불리었으니, 지적이고자 했던 멋쟁이들에게 ‘모던’이란 말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쉬크’의 유행이 시들해진 건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쓰임이 시들해진 상황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시크’는 ‘무심하고 도도함’을 뜻한다. ‘지적이고 세련된 근대인’이 ‘무심하고 도도한 현대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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