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잘 아는 전직 검찰 고위간부를 얼마 전 만나 그에 대한 평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유능한 검사이기도 하지만 기발한 착상을 잘 한다는 얘기였다. 범죄 혐의를 구성하는 역량이 탁월하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거악’을 다룬 일이 많았던 그가 사건을 ‘핸들링’하는 솜씨는 범죄 혐의 구성뿐만 아니라 언론을 포함해 여론을 이끌어내는 능력에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과거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에서 보였던 강골 기질은 오히려 덤이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그를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장으로 앉힌 이유일 것이고, 단순히 전 정권의 핍박을 받아서가 아니라 여러 단계를 뛰어넘어 중앙지검장에 발탁된 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의 말을 달리 하면 바둑에서 말하는 ‘묘수’를 잘 둔다는 얘기가 될 것인데, 물론 여기에는 논쟁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박 특검이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 예언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에서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한 뇌물죄 구성도 그 한 대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뇌물죄로 함께 엮인 이 부회장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부정한 청탁으로 본 ‘경영권 승계의 묵시적 청탁’은 법원 안팎에서 논쟁을 부르고, 이에 대한 1, 2심 판단도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물죄를 포함한 국정농단 사건 재판 결과가 대체로 윤 지검장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 뇌물죄와 관련해 “한 푼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거나 “엮어도 너무 엮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발도 공허한 변명에 지나지 않은 꼴이 되고 있다. 공범인 최순실씨가 20년형을 받았으니, 범죄 혐의 대부분이 겹치는 박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 지위라는 그 책임에 비춰 그 이상의 중형 선고를 피하기 어렵다.

비근한 예가 될만한 게 국정원 특수활동비 뇌물죄 구성이다. 국정원의 깜깜이 예산에 숨겨진 청와대 통치자금 예산이라거나 역대 정권의 오랜 관행이었다는 주장도 사적 사용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힘을 잃었다. 돈 관리에 관한 한 털어도 나올게 없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문제를 포함해 다스 비자금, 다스 해외 소송 비용의 삼성 대납, 대선 불법자금 수수 의혹으로 급기야 오는 14일 검찰 소환 조사를 통보 받았다. 애초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배경으로 한 횡령 고발로 시작된 수사는 고구마 줄기처럼 여러 범죄 혐의가 엮이면서 이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을 “퇴행적 시도”라고 했던, 옥죄여 오는 수사에 “정치 보복”이라 했던 그의 반발이 무색해졌다. 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 전 대통령 역시 차곡차곡 쌓이는 범죄 혐의로 말미암아 여론으로는 동정의 여지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동시에 감옥에 가두는 건 국제 망신이라는 일각의 주장이나 현 정권의 부담이 될 것이란 말도 힘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측근 그룹의 줄구속에 따른 형평성이나 국민의 도덕적 눈높이로 보건대 ‘약발’이 먹히지 않을 얘기다.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 책임자의 치밀한 수사 역량이나 기발한 범죄 혐의 구성 능력을 높이 사고자 하는 게 아니다. 만만치 않은 이 나라 법망 수준과 한층 높아진 국민의 도덕적 눈높이를 빼놓고서 지금의 수사결과를 말할 수 없다.

이 정권의 적폐 청산 작업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공공연히 ‘너희들은 적폐에서 자유로운지 보자’고 한다. 이미 사적 이해를 같이하는 단체의 정부 예산을 십 원 한 장 빼지 말라고 했던 전병헌씨 사례를 보자면, 문재인 정부도 권력의 빛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두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경험했듯이 정치적 실패보다 더 가혹하고 무서운 게 도덕적 실패다. 대권을 꿈꾸던 젊은 지도자도 그 바람에 ‘훅’ 갔다.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