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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할 말은 하는 동맹

입력
2018.03.05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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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장기공석, 통상압력에 말도 못 꺼내

7일 열리는 방위비협상도 고액청구 전망

한미동맹 중요하나 과도한 비용 경계해야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가 지난달 28일 서울 정동 주한미국대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가 지난달 28일 서울 정동 주한미국대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가 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비핵화를 강조한 기자회견 내용으로 볼 때 미 본국 정부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회견으로 미국 대사가 1년 넘게 공석이라는 사실이 뚜렷이 부각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지명을 철회한 빅터 차 주한 미 대사 내정자는 우리 정부가 아그레망을 내준 상태였다. 내막이야 어떻든 우리 측에 별다른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내정을 철회한 것은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다. 북핵 문제 와중에 서울과 워싱턴의 핵심 소통 채널 장기 공백은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언제 해결될지 기약하기도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한국을 동맹국으로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정부 수립 이후 초유의 사태에도 우리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미국의 전직 관리들이 우려를 대신 전해 줄 정도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14개월째 한국에 대사가 없다는 것은 문제”라며 “동맹은 거래적 측면보다 신뢰의 측면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동맹 경시는 통상 압력에서 두드러진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세이프가드’ 발동에 이어 일종의 보복 관세인 ‘호혜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재앙’이라고 표현하고,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방침에는 “GM이 디트로이트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인도 안된 말을 하며 부추겼다. 시름에 빠진 동맹국 정부의 입장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트럼프가 한미동맹을 ‘미국 우선주의’의 하부구조로 전락시키려는 데도 우리는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맹과 통상의 분리 대응을 지시하자 보수 진영은 “정신 나간 소리”라고 반발한다. 정작 트럼프는 “(한국 등) 일부 국가는 이른바 동맹이지만 무역에서는 동맹이 아니다”며 분리하는데 유독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관세 폭탄에 주요 동맹국인 일본, 호주, 캐나다까지 반격 대열에 가세하고 있지만 한국은 “최악의 사태를 피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고작이다. 대미 3대 철강 수출국으로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한데도 입도 벙긋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외신들이 “북핵 대응에는 한국에 협력을 요구하면서 통상에서 일방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매우 모순된 외교”라고 우리 할 말을 대변하겠는가.

통상뿐만 아니다. 7일 시작되는 10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는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게 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동맹국들이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엄포를 놨다. 연간 분담액이 1조원을 훌쩍 넘을 거라는 전망이 기정사실화돼 있다. 미국산 무기 수입국 세계 1위로 연간 7조원 이상을 쓰는데 또 이런 고액청구서가 날아온다면 “이게 동맹이냐”는 푸념이 안 나올 수 없다.

미국은 방위비 협상에 “공평한 분담”이라는 관점을 들이대지만 실상은 다르다. 무상 토지 이용 등 직ㆍ간접 비용을 포함하면 지금도 과도한 수준일뿐더러 미군의 분담금 임의 전용과 지급된 현금을 쌓아 놓는 행태는 사실상 불법에 가깝다. 미군은 우리가 지급한 공적자금으로 돈놀이를 해 막대한 이자 수익까지 올리고 있다. 그동안은 동맹관계를 고려해 눈감았지만 이젠 당당히 문제를 제기해 바로잡아야 한다.

한미동맹은 필요하다. 북한의 핵 위협이 점증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관계를 이용해 비즈니스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미동맹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타당성과 관계없이 ‘반미’로 여기는 경직된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을 우리 국익보다 우선시하는 맹목주의적 태도는 한국 외교의 손발을 묶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동맹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할 말은 할 줄 아는 게 진정 국익을 위한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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