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과 지금 한반도 정세 비슷
당시 특사 파견 ‘북핵 폐기’ 견인
美, 자산동결에 北 다시 엇나가
“방북 이후 상황 관리 신경 써야”
13년 전인 2005년 여름 한반도 정세도 지금과 흡사했다. 2004년 6월을 끝으로 1년 간 북핵 6자 회담이 열리지 않으면서 비핵화 협상이 교착하고, 자연스레 남북관계도 10개월 넘게 단절된 상태였다. 2005년 2월 북한은 공식적으로 핵 보유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특사의 방북은 꽉 막혔던 북핵 국면에 물꼬를 텄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4개월 후인 2005년 6월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면담은 성공적이었다. 우리 측은 200만㎾ 규모의 전력을 보내기로 북측에 제안했고, 그 결과 북한은 다시 6자 회담 테이블로 복귀했다. 대화에 소극적이던 미국 정부도 호응할 수밖에 없었다.
특사 방북은 3개월 뒤 9ㆍ19 공동성명의 견인차가 됐다.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속도가 붙은 6자 회담은 북핵 폐기에 관한 첫 합의 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성명에는 6자 회담 당사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는 동시에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복귀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도리어 미국의 일방적 조치로 상황이 더 꼬였다. 9ㆍ19성명 채택 이튿날 곧바로 미 재무부가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 의혹을 제기하며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북한 계좌에 들어 있던 2,40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동결한 것이다. 초강력 제재에 뒤통수를 맞은 북한은 반발하며 다시 엇나갔고, 이듬해 10월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공교롭게 문재인 대통령이 5일 파견한 대북특별사절대표단도 지난해 11월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하면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지 4개월 만에 북한을 찾았다.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대화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일단 북한과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도록 유도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따라서 2005년의 낭패가 재연되지 않도록 방북 이후 상황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당장의 방북 성과에만 힘을 쏟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당시 정동영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우리의 중재로 북미 간 대화의 문을 열더라도 당사자가 움직일 의지가 없다면 협상은 지속되기 어렵다”며 “서로 차이를 좁힐 수 있도록 우리가 양측을 왕래하면서 대안 제시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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