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마당 있다” 자랑 의미
‘족보’ 있는 닭 한 마리에 350달러
닭장에 태양광 패널 설치하기도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닭이 재력의 상징이 되고 있다. AFP

최첨단 기술의 심장인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미국 엘리트 집단에서 ‘닭’이 지위와 재력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몇 년 간 실리콘밸리에서 자녀와 함께 마당에서 닭을 키워 계란을 직접 얻는 ‘닭 사육’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시골에서야 흔한 이 풍경이 실리콘밸리에선 친환경적 삶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력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위 상징’이 된 것이다. 생태주의가 탈문명, 탈산업화 기치로 나왔지만 도시에선 부유해야 친환경적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오래된 아이러니다. 실리콘밸리의 닭 사육 취미도 같은 맥락이다.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며 일과를 보내는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에게 닭 사육은 빡빡한 일상의 탈출구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휴식 시간인 동시에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오락거리다. 다른 애완 동물과 달리, 닭은 수시로 계란을 낳기에 자연 식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취미를 농촌의 닭 키우기처럼 생각하면 오산이다. 닭장만도 비싼 것은 2만 달러에 달한다. 고급 목재를 사용하고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고 자동문에 카메라까지 장착된 첨단 닭장인 까닭이다. 스마트폰으로 닭장의 온도와 환기, 조명을 조절할 수 있고 야생 고양이나 코요테 등의 침입에 대비한 보안 장치도 설치돼 있다.

농촌에서는 닭 한 마리를 사는 데 15달러면 충분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다르다. 이들이 키우는 닭은 ‘족보’가 있는 품종으로서 병아리 한 마리가 350달러에 달한다. 멋진 닭 벼슬을 가졌거나 싱싱한 달걀을 낳을 수 있는 뼈대 있는 가문의 닭이 따로 있는 셈이다.

실리콘밸리 고객들에게 닭 관련 제품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레슬리 시트로엔씨의 고객은 주로 30대와 40대의 젊은 가장이 이끄는 가족들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파랑, 녹색, 갈색 등 다채로운 색조의 달걀이다”며 “’이 달걀은 월마트나 홀푸드가 아니라 우리 마당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좋은 달걀을 얻기 위해선 닭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모이로 훈제 연어나 스테이크, 야채, 유기농 수박 등을 주는 경우도 있다.

시트로엔씨의 고객 중 한 명은 닭에게 모이를 주기 위한 요리사를 따로 두고 있다. 시트로엔씨의 아들 루카씨는 “닭을 키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마당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 집에는 큰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며 “땅값 비싼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만큼 돈이 많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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