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출범한 ‘무역과 관세에 관한 일반 협정’(GATT)과 그 뒤를 이은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 장벽 중 특히 관세를 내리는데 노력을 해왔다. 국경은 낮아졌고 세계화라는 큰 흐름도 생겼다. 그 배경에는 고관세로 자국 시장을 보호하고 타국의 궁핍화를 꾀하면 1939년 경제 대공황에서 보듯 공멸에 이르고 만다는 교훈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선봉에 미국이 있었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세계 무역질서에 충격을 주고 있다. 다자주의는 낭패를 만났고, 지금 WTO는 개점 휴업 상태다. 미국우선주의는 국제 문제를 다루는 데에서 가급적 많은 국가의 참여 아래 함께 가자는 다자주의보다 ‘일방주의’,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국제주의보다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국가주의’, 무역에서는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을 예고했다.

지금 자국 내에서 인기가 별로 없는 정치인 트럼프로서는 자신의 공약과 철학을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이행해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고, 다가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하지만 장사꾼 트럼프의 또 하나의 노림수는 무역 관련 조치를 통해 주요 2개국(G2)으로 등장했지만 경제적 허점을 안고 있는 중국을 길들이고, 크고 개방된 시장을 무기로 미국 위주의 새로운 질서 형성의 길을 닦자는 것인 듯하다. 그래서 최근 미국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기존 무역질서에서 통하던 논리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일방주의는 교역 상대국의 반발을 초래하고,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도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의 흐름으로 볼 때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트럼프 통상 정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트럼프 통상 정책은 대미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는 각별한 현안일 수밖에 없다. 양국 간 통상 관계는 지금 긴장되고 해법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취임 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간 동맹의 한 축으로 불리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줄곧 과장되고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발언을 반복해왔다. 철강 등 우리 수출품에 가장 많은 건수의 반덤핑ㆍ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철강에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25% 관세를 또 매기겠다고 하고, 세탁기와 부품, 태양광 패널은 세이프가드, 자동차는 한미FTA 개정 협상에서 우선적 타깃이 되고 있다.

철강은 미국 내 생산량으로는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어차피 수입이 불가피한데도 수입 억제라는 초강수를 뒀다. 미 자동차 업계 등의 원가 상승, 품질 저하와 소비자 이익 침해까지 우려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당장의 정치적 지지가 더 급해 보인다. 여기에 우리 대통령이 직접 나서 WTO 제소 등 강경 대응을 주문하면서 한미 통상 분야에서 긴장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 대응 방향은 네 가지 정도다. 첫째, 미국 시장은 크고 개방도도 높고 다양한 소비층을 갖고 있어 외면할 수 없다. 상대의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조치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되 냉정한 자세와 정연한 논리로 순화시키는 노력이 우선이다. 그 방편으로 WTO 등 분쟁 해결책을 택할 때 같은 입장의 국가들과의 공동 제소로 국제 여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둘째, 한미FTA 개정 협상은 미국 측 요구로 열렸지만 어쨌든 협상의 장이 돼 있다. 협상은 주고 받기로 타결될 수밖에 없다. 이걸 소화전으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 우리의 대미 무역과 투자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 업계, 상ㆍ하원 의원 등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해야 한다. 넷째, 지금 우리 통상 당국은 한미FTA 개정 협상에 몰입돼 있지만 미국이 전부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리한 통상 조치들을 취하면서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 가능성을 언급했다. 태평양 연안국들의 자유무역 체제에서 배제될 경우 교역과 투자 분야에서의 상당한 기회 상실은 불 보듯 뻔하다. 검토와 대비가 필요하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19대 국회 새누리당 의원)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19대 국회 새누리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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